‘제3의 물결(The Third Wave)’ ‘미래 쇼크(Future Shock)’ ‘권력이동(Power shift)’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사진)의 저서 제목만봐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치게 하는 그의 혜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 정보화 혁명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토플러에 열광하던 한국 사회 풍경이 정말로 그립기 때문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래학자이지만, 한국 사회 만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도 없습니다. 그는 1989년 한국에서 ‘제3의 물결’과 ‘미래 쇼크’를 출간했고 1991년엔 ‘권력이동’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권력이동은 34만4000부나 팔리며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은 3만부만 넘어도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2001년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의뢰로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11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토플러는 "한국이 세계 경제의 사다리 상위층에 자리 잡으려면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지식기반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토플러, 김당선자 정책자문 자청 <1998. 2. 4>
앨빈 토플러, 김대통령 국정자문 <1998. 3. 30>
金대통령, 앨빈 토플러 박사 면담 <1998. 4. 7>

토플러는 2006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을 만나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위 사진). 그는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뉴로사이언스(뇌신경)’ ‘양자연계연구’ ‘하이퍼 농업’ ‘대체 에너지’ 등 5가지를 제시했지요.

박근혜,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면담 <2006. 12. 15>

토플러는 한국 대통령들뿐 아니라 세계 지도자들의 멘토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의 개혁파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지요. 다행히도 그가 원하는 정보화 사회를 한발 앞서 실현한 곳은 한국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토플러와 만나 오랫동안 환담을 나눴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토플러의 타계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2011년 4월 22일 경기지사 시절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토플러 박사 부부와 대담을 나눴습니다. 김 전 지사는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의 부음을 전한 뉴스도 꼼꼼하게 챙겨보고 있었습니다.

김 전 지사는 토플러의 미래 예언부터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토플러가 젊었을 때 공장에서 일했어요. 이민자 가정인 그의 어린 시절이 유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당시 지식인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풍토도 있었던 것 같아요. 토플러의 부인도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대화에 참여하며 훈수도 많이 뒀어요. 훌륭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문수,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협은 저출산" <2011. 4. 22>
앨빈 토플러 만난 김문수, "중국 어떻게 되나" <2011. 4. 23>

토플러는 1928년 10월 뉴욕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는 1949년 뉴욕대를 졸업한 뒤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했습니다. 뉴욕타임즈(NYT)는 대학 졸업자로서 노동직을 선택한 것은 대량생산체제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픈 갈망 때문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해보니, 공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틀리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 지사는 덧붙였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도 많이 내다보지만, 사회 저변, 특히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노동자로서 경험한 덕분에 정보화 사회의 도래, 지식 근로자의 출현에 대한 제대로 된 혜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토플러가 남긴 저서는 인류가 품격있고 존엄감 있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알려주었다”면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앨빈 토플러 박사님,
부디 영면하소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토플러 박사님을 사랑했던 한국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없는 풋내기 청년에게 세상과 미래를 열어주었던 토플러 박사님께 머리 숙여 깊은 애도의 마음을 올립니다. 대전환의 시점에 서 있는 대한민국과 새누리당에게 토플러 박사의 교훈은 실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앨빈 토플러의 타계 소식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환난을 맞이하고서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15년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저(低)성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다시한번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회로 전환하기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토플러의 인터뷰 기사를 전합니다.

[토플러 인터뷰] "한국재벌 스스로 해체길 걸을 것" <2000. 3. 30>
[앨빈 토플러] "정보화에 기업은 일류, 정부는 삼류" <2000. 4. 1>
앨빈 토플러 "아시아 금융시스템 마차에 엔진 단 격" <2001. 6. 7>
토플러 "바이오 정보산업 한국이 키워내길" <2001. 6. 7>
앨빈 토플러 "풀빵 찍듯하는 학교 국가 경제 망칩니다" <2006. 12. 15>
['부의 미래'] 시간·공간·지식의 혁명이 한국을 뒤흔든다 <2006. 12. 28>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별세, 소름돋는 명언 재조명..."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없는 일 위해 시간낭비" <2016.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