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80) 화백이 경찰에서 조사 대상이 된 작품 중 일부를 위작으로 인정하라고 회유했다고 30일 주장했다. 경찰은 즉각 "이 화백이 없는 얘기를 지어내 거짓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우환 vs 경찰, 위작 회유 진실 공방

이 화백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번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 중 한 사람이 변호사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을 다 내보낸 뒤 '위조범이 위작을 그렸다는데 왜 그렇게 우기느냐'며 '타협으로 (1970년대 후반 작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13점 중 (위조범이 위조했다고 한) 4점은 가짜라고 하고 다른 건 진짜로 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어 "(나는) '13점이 모두 내 작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답했다"며 "자기 자식 죽어 없는 것으로 하라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나는 피해자이지, 범죄자가 아닙니다.”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3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화백 발언이 알려지자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수사관 한 명과 이우환 화백 단둘이 있었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이 화백에게 '권위 때문에 위작인데도 위작이 아니라고 하시지 말고 소신대로 감정해달라'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설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화백은 "경찰에 녹화 영상이 있으면 밝히라고 하라"며 "(경찰이 회유하면서) 살그머니 얘기해서 녹화가 됐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은 이 화백이 작품을 살펴보는 과정은 녹화돼 있지만, 수사관과 대화하는 장면 등은 녹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가 의견 존중해야" 주장 되풀이

간담회에서 이 화백은 "13점 모두 진작(眞作)"이라는 전날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나만의 호흡, 리듬, 색채로 그린 작품이기에 내 눈으로 확인한 바 틀림없는 내 그림이다. 호흡은 지문 같은 것이라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다" "내 그림은 1분 만에 내가 알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아주 희한한 답을 만들어 거기에 몰아넣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함정을 파놓았다", "국가권력과 합심해서 한 작가를 그냥 떡으로 만들려고 한다" 식으로 시종일관 '피해자'라는 논리를 피력했다.

경찰이 위작 근거로 내세운 사항에 대해선 "경찰이 내게 보여준 13점은 내 방식의 색깔로 쓰였다"며 "위조범이 그린 4점이 13점 안에 포함돼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보여준 그 사람들(위조범) 위작 시연 동영상을 보니 군청색을 만드는 데 한 가지(안료)를 썼던데 나는 몇 가지 번호(안료)를 섞어서 쓴다. 그런데 13점은 모두 나처럼 군청색을 표현한 작품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위작 근거로 제시한 인위적 캔버스 노후화, 물감에서 유리 가루 검출 등에 대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과학적 분석을 했다는데 분석표는 그럴듯하지만 무슨 분석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화백의 대응에 대해 미술계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문제 핵심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건데 이 화백이 이 말 저 말 하면서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우환, 왜 "모두 진짜"라고 하나

미술계에선 "모두 진짜"라는 이 화백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국과수 조사에서 위작 결론이 나왔고, 위조범까지 잡힌 마당이기 때문이다. 한 미술 평론가는 "이 화백이 정확한 근거 제시보다는 '진짜'라는 전제를 깔고 자기 논리만 무리하게 되풀이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 화백이 이런 여론을 예상하면서도 "진짜"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한 미술경매 전문가는 "이 화백이 자신의 작품을 취급한 대형 화랑들에 미칠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위작 파동이 국제적 명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모두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 화백은 화랑을 감싼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생각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내 작품을 제일 열심히 취급한 곳이 A화랑이었다. 안심하고 감정을 맡긴 적이 있는데 A화랑에선 감정을 안 하려 해서 내가 직접 작품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해외에선 위작 사건이 발생하면 감정 전문가가 나서고 작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하고, 작가가 개입되면 전문가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 화백이 초반부터 직접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말을 바꾸기가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고 했다.

이 화백으로선 '최선의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최근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하면서 "작품의 진위 판단은 작가 의견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졌다. 한 미술대학 교수는 "천경자의 전례를 밟지 않으려면 작가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며 "이러면 경찰이 아무리 조사를 강행해도 사건은 미궁에 빠질 공산이 크다. 결국 이우환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구도"라고 했다. 이 화백은 이날 1시간 10분 간담회 동안 내내 "내가 작가다. 왜 내 말을 믿지 않느냐"는 말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