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매일 혼나요.' '어차피 욕먹을 텐데 열심히 해야 하나요?' 강연장 입구, 비치된 게시판에 각종 한탄이 담긴 포스트잇이 나붙었다. 오후 7시가 되자 저녁밥도 건너뛰고 칼퇴근한 직장인 150여명이 모여들었다. 자리를 메운 미생(未生)들의 눈빛에선 허기를 물리친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도서관협회,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2016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이 29일 한국산업단지공단 키콕스벤처센터에서 달라진 얼굴을 선보였다. 찾아가는 콘서트 형식을 빌려 '직장인, 인문학을 만나다'를 테마로 잡았다. 이날 주제는 직장인의 영원한 숙제, '소통'. 대화 교육 전문가 박재연 리플러스 대표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연사로 등장했다.

박 대표는 강단에 서자마자 "윗사람의 말투를 곱게 바꾸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내가 편하려면요, 내 듣는 습관을 바꿔야 해요."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담을 풀었다. 이혼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폭언과 학대 속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했다.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 평소엔 자상한 분들이 별안간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이유가 뭘까요? 원하는 걸 얘기하지 못하고 감정을 쏟아내는 데만 주력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서툴다고 진단했다.

29일 열린 ‘직장인, 인문학을 만나다’ 강연을 맡은 박재연(가운데) 리플러스 대표와 정재승(오른쪽) 카이스트 교수가 무대에 올라 청중의 질문을 듣고 있다. 질문은 대개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의 고달픔에 맞닿아 있었다.

박 대표는 "만약 상대의 말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다면 피하는 대신 그 말 자체를 들여다보라"고 조언했다. "화가 난 사람은 자신의 핵심 욕구를 까먹은 채 흥분하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 그 사람은 자기만의 비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기를 부탁하고 있는 거예요. 감정은 걷어내고 그 부탁만 찬찬히 들어주세요. 그럼 상처받을 일도 줄어듭니다."

다음 연사로 나선 정재승 교수는 먼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오늘을 제시했다. 신경과학계의 수퍼 스타 미국 UC버클리 잭 갤런트 교수,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등의 사례를 통해 "이젠 로봇에도 소통의 메커니즘 주입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정작 인간도 소통에 서툴다"고 말했다. "뇌 전체를 골고루 잘 쓰고,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을 서로 연결하는 게 중요해진 거죠." 서로 상관없는 걸 이어 새로운 걸 탄생시키는 게 창의력인데 그 창의력은 소통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종 업계 사람들, 전혀 별개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혁신이 나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꺼려하죠." 그는 통계·실험 자료를 여럿 제시하면서 "리더의 성과가 가장 높을 때는 '지능'과 '공감 능력'이 결합했을 때다. 하지만 이 두 요소의 능력치는 대개 반비례한다. 이것이 우리가 평소 소통 연습에 각별히 힘써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직장인 청중들의 고민이 적힌 포스트잇이 강연장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다.

40분씩의 강연을 마친 두 강연자가 모두 무대에 올랐다. '직장 상사의 화'에 대한 얘기가 더 이어졌다. 박 대표가 "상사는 자신의 통제력이 부하들에게 제대로 미치지 않고 있다고 느낄 때 화를 낸다"고 말하자 정 교수가 "소리 없이 해치우는 호랑이가 아니라 왈왈 짖는 개의 전략"이라며 맞장구쳤다. 폭소가 터졌다. "인문학의 힘은 두려움 없이 상대를 객관화할 수 있게 돕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훨씬 쉬워지고요."

나이와 경력을 떠나 공감의 폭이 넓었다. 신입사원 김민수(28)씨는 "평소 고민이 그대로 예시로 등장해 놀랐다"며 "활용 가능한 조언이 많이 나와 좋았다"고 말했다. 16년차 회사원 진설희(35)씨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강연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길 위의 인문학'이 또 한 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www.libraryonroad.kr (070)4659-7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