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 20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장. 첫 대면을 앞두고 국회의원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간부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업무보고의 핵심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대한 감독 실패'였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분식회계'와 ‘회계투명성'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자체 재무감사 결과와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의 감사 결과 사이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고 막대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한 만큼 반드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전 국민이 속았다”며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부실감사에 따른 회계법인의 책임 강화를 주문했다.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이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회계법인이 알아내기 쉽지 않다”며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인회계사들이 사용하던 회계 전문 용어들이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그만큼 기업의 부실감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날 회의장 안팎에선 국회가 내년 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업의 회계감사 문제를 화두로 ‘경제민주화 시즌3’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조선비즈가 지난 23일 개최한 ‘2016 회계감사 콘퍼런스’에서 이미 감지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른 아침부터 700여명에 달하는 청중들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우조선과 딜로이트안진을 상대로 소송을 낸 투자자들도 참석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개회식 축사에서 “현재 국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들의 분식회계와 관리부실에 대해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KPMG의 호세 로드리게스 글로벌 감사위원회지원센터 리더는 “기업의 회계부정 행위는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며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들키기 전까지 멈출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들키면 기업의 신뢰성, 자본 시장의 재무 신뢰성, 감사인의 신뢰성까지 모두 훼손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이 조직적으로 3년간 5조4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했다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설정한 회사 경영 목표치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직원들이 대규모로 동원됐다. 이렇게 포장된 재무 보고서는 금융권 대출에 악용됐고, 대출은 다시 새로운 회계 부정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분식회계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중독성이 강하고 치명적이다. 잘못됐다고 깨달았을 땐 이미 손 쓸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가 된다. 마약사범은 그 죄를 철저히 물어 감옥에 보내지만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인에 대한 처벌수위는 낮다. 부실기업 경영인이 분식회계 유혹에 자주 빠지는 이유다. 특히 한국은 선진국과는 달리 분식회계에 동원된 직원들이 제대로 처벌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업 최고경영진의 강한 압력을 이기지 못한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분식회계에 가담하게 된다.

정치권이 산업은행 청문회로 시끄럽다. 기업의 부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산업은행과 회계법인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임직원, 내부감사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재벌 기업의 대주주가 회사 자금을 전용했다가 감옥에 다녀오고 다시 경영에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경제 범죄를 저지른 경영인이 복귀하도록 허용하면 그 기업은 공공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2016 회계감사 콘퍼런스에 참석한 브루스 골드버그 미국 PwC 감사본부 부본부장의 말처럼 경제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은 다시는 경영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