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 무사히 잘 했습니다.”

직장인 박경환(가명)씨는 얼마 전 집에서 저녁밥을 먹다가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발신자는 ‘아들 부대’. 휴가를 나왔던 아들이 부대로 복귀한다며 집을 나선 지 4시간 만에 전달된 메시지였다. 잠시 후 박씨의 휴대폰에 “아들입니다. 전화주세요”라고 적힌 메시지가 날아왔다. 박씨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관에게 휴가 복귀 신고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박씨는 아들과 10분 간 통화했다.

군 사병들의 통신 이용 문화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엄마, 나야”를 외치는 모습,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지금도 물론 여전하다. 그러나 사병들이 선택할 수 있는 통신기기의 종류가 과거보다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사병들은 생활관에 비치된 공용 수신폰으로 가족과 통화를 하거나 영내 마트에서 스마트폰을 빌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태블릿PC 영상통화로 그리운 할머니의 얼굴을 확인하는 사병도 있다.

한 남성이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부대 생활관에 비치된 공용 수신폰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생활관에 비치된 공용폰…일과 후 가족과 통화

대학교 휴학생 안한희(21)씨는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올해 5월 병장 만기 전역했다. 안씨는 올해 초 군 생활관에 비치된 공용 수신폰 덕분에 가족·친구들과 연락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안씨는 “이전에는 대기줄이 상대적으로 덜 긴 공중전화를 찾아다녔다”면서 “공용 수신폰이 도입된 뒤로는 가족과의 통화가 한결 편했다”고 말했다.

공용 수신폰은 생활관 한 곳당 1개씩 지급된다. ‘철통보안’이 생명인 환경이다보니 사병이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 수는 없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만 있다. 또 휴대폰 사용은 일과 후부터 취침 전까지만 허용된다. 일과 중에는 행정반에서 휴대폰을 보관하다가 일과가 끝나면 각 생활관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통화는 수신만 가능한 것과 달리 문자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병이 문자 메시지 내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군 정보 유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인과의 연락을 원하는 사병은 ‘아들입니다. 전화주세요’, ‘휴가 복귀 잘 했습니다’ 등 부대 내 관리자가 미리 지정해둔 문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보내야 한다. 메시지를 받은 상대방이 전화를 걸면 통화가 시작된다.

한 사병이 공용 수신폰을 이용해 지인과 통화하고 있다.

안씨는 “공용 수신폰을 특정인이 독차지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1인당 10분 내외’ 규칙을 정했다”면서 “규칙 준수 여부를 중대장 등 간부가 직접 점검했기 때문에 모든 사병이 골고루 휴대폰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용 수신폰 서비스는 LG유플러스(032640)가 올해 1월 전군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LG유플러스는 총 4만4686대의 휴대폰을 군의 요구에 맞춰 개량한 뒤 전군에 납품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공용 수신폰을 이용한 음성통화 건수는 197만건(1월)에서 262만건(3월)으로 33% 증가했다”면서 “가족·친구가 생활관에 비치된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건수도 같은 기간 75만건에서 105만건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사병들이 부대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던 시절, 한 사병이 공중전화를 이용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다.

◆ 영내 마트서 유심 신청, 대여폰 들고 휴가

모든 사병이 생활관에 비치된 공용 수신폰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가족이나 애인하고 전화하고 싶은 때도 많기 때문이다. 서른살이 넘어 현역 입대한 자영업자 서정권(가명)씨는 “늦은 나이에 입대해 어린 고참들 주변에서 공용 수신폰을 쓰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사병들은 영내 마트로 달려간다. 이른바 ‘군 장병 휴대폰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서비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부대 안 마트에서 전용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을 신청한 다음 대여용 휴대폰에 끼워 사용하면 된다. 부대 안에서 일과 후에 이용할 수도 있지만 휴가나 외출 시 대여폰을 들고 나갈 수도 있다. 알뜰폰 업체 이지모바일이 이러한 서비스 ‘이지톡’을 제공한다. 올해 2월 본격화된 이지톡은 전국의 대대급 이상 부대 900여곳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충청도 지역 부대에서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최근 만기 전역한 대학교 휴학생 박상진(가명)씨는 군생활 끝무렵에 이지톡 서비스를 종종 이용했다. 유심은 처음 가입할 때 한 번만 신청하면 된다. 그 이후부터는 유심을 들고 영내 마트에 가서 전용 휴대폰을 빌려 쓰는 식이다. 유심에는 전화번호 저장 기능이 포함돼 있다. 개인 전화번호도 제공된다.

한 사병이 영내 마트에서 휴대폰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박씨는 매달 1만5000원이 충전되는 ‘15요금제’에 가입했다. 그는 “일과가 끝난 후 후임 사병들과 영내 마트에서 간식을 먹으며 대여폰을 종종 사용했다”며 “막내 사병이 부모님과 통화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지모바일은 지난 4월 이지톡에 가입한 사병들이 인스타그램, 네이버 웹툰, 지니, 아프리카TV, 유튜브 등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다. 이지모바일 관계자는 “교육 관련 콘텐츠도 늘려 사병들이 부대 안에서도 대여폰을 통해 문화·교육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군 장병들이 여가 시간에 PC를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지식정보방’에 영상통화가 가능한 태블릿PC를 설치한 부대도 있다.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지난해 말 만기 전역한 대학생 강규민(가명)씨는 “할머니가 편찮으신데 가끔 영상통화를 하면서 건강을 체크했다”며 “부대에서도 가끔씩 사병들의 사진을 네이버 밴드에 올려 가족들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