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메리어트 마르퀴스 호텔에서 열린‘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리더스 서밋 2016’에서 연설하고 있다.

"전 세계 통신회사에는 이동전화를 이용하는 73억명이 만드는 위치정보, 해외로밍(roaming·이동전화 해외 서비스) 등 각종 빅데이터가 쌓여 있습니다. 국제연합(UN)과 전 세계 통신사가 힘을 합친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 확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KT 황창규 회장은 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메리어트 마르퀴스 호텔에서 열린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리더스 서밋'에서 지카 바이러스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해 글로벌 통신사들의 '빅데이터 공유'를 제안했다. 유엔 주도 아래 세계 통신사들이 해외 로밍 데이터 등을 공유하면 감염병 발생 지역 경유자를 파악해 감염병 확산 경로를 예측할 뿐 아니라,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이를 위해 KT가 확보한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의 확산 방지 관련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개발도상국에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구축 등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2년 전 AI 데이터 분석서 출발

황 회장의 이날 제안은 지난 2014년 국내에 AI가 발생했을 때 얻게 된 KT의 노하우가 출발점이다. 당시 KT는 트럭 5만여대에 장착된 GPS(위성위치추적장치)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AI 확산이 단순히 조류의 이동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 발병 지역을 지나간 운반 트럭의 이동 경로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을 파악했다. KT는 당시 데이터 분석 내용을 정부에 제공했고, 지난해부터 이 방법은 AI뿐 아니라 구제역 등 가축 감염병 확산 차단에 활용되고 있다.

황 회장은 "예측 정확도가 91%"라며 "이를 통해 한국에서 연간 18억달러(약 2조1000억원)의 조류독감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KT에 따르면, 국내 가축 감염병은 지난 2014년 1~5월 205건이 발생했지만 빅데이터 시범 활용 기간인 2014년 12월부터 작년 3월까지 133건으로 줄었고, 본격적으로 도입된 작년 9월부터 올 3월까지 16건으로 떨어졌다.

황 회장은 "이 같은 빅데이터 분석을 전 세계적으로 활용하고, 가축병뿐 아니라 인류를 위협하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지카 바이러스 같은 질병으로 대상을 넓히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로밍 데이터만 갖고도 감염병 발생 지역을 어느 나라 국민이 언제 경유했는지 분석이 가능한 만큼 질병 확산 예상 경로를 파악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전 세계 800여 개 통신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제도적 지원, 마지막으로 유엔이 이 사안에 대해 각국의 정부와 통신사를 총괄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제대로 공유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서 '로밍 활용' 감염병 차단 시스템 준비 중

일단 황 회장의 제안에 대해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회장은 이날 연설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오늘 회의가 끝난 뒤 유엔 관계자들과 만났는데, 우리의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분위기였다"며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도 빅데이터 공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다른 통신사들과 실무 협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각국 통신사끼리는 해외 로밍을 이용한 가입자들의 망(網) 사용료 정산 문제 때문에 사실상 정보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KT는 현재 국내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질병관리본부 등과 함께 통신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차단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검역 시스템은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사람의 마지막 방문 국가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새 시스템은 해외 로밍 데이터 분석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기 전 경유한 국가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KT 관계자는 "현재 해외여행을 가는 국민의 약 80%가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밀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이날 연설을 한 UNGC는 지난 2000년 설립된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 전문기구로, 유엔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160여개국의 기업과 단체 1만3000여곳이 회원으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