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트'... 영화라기보다는 4D체험관 영상물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교전 장면, '에일리언'에서 착상한 외계인 묘사
20년 재난 SF영화의 추억을 더듬는 올드 관객과 컴퓨터 게임 유저들에게 어필

6월 22일 개봉 이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트'. IMAX 스크린용으로 훌륭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인디펜더스 데이: 리써전트(이하 ‘인디펜더스 데이2’)’가 개봉했다. 1996년에 개봉해서 SF재난영화의 이정표를 세웠던 ‘인디펜더스 데이’의 20년 후 이야기다. 외계인 침공을 막아냈던 지구인들은 20주년 승전행사를 준비 중이다. 전쟁으로 지구 인구의 절반을 잃었지만, 다시 일어서서 도시를 재건했다.

외계의 과학기술 도입으로 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지구위에는 궤도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묘사는 전쟁이 과학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다는 문명사적 인식을 담고 있다.

◆ 세계의 랜드마크가 파괴되는 스펙터클한 장면

그러나 다시 전운이 밀려온다. 아프리카에 불시착한 채 방치되어 있던 우주모함에 불이 켜지고, 지구 방위국에 생포되어 있던 외계인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외계인과 접촉해서 정신세계를 공유하게 된 사람들이 환영을 보거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전편에서 직접 전투기를 몰고 지구방위에 나섰던 휘트모어 대통령(빌 풀한)과 외계 우주모함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심어 적을 궤멸시켰던 데이빗 박사(제프 골드블럼)는 외계인의 재침을 경고한다. 마침내 달 기지에 우주선이 날아온다. 지구 방위국은 전투기를 출격시켜 파괴하지만, 이는 진짜 적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은근히 전쟁이 과학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진짜 적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대서양 상공에 내려앉는다. ‘자가 중력’으로 지구의 도시들이 공중으로 빨려 올라가고, 세계의 랜드 마크가 일시에 파괴되는 모습은 엄청난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교전장면이나, ‘에일리언’시리즈를 백퍼센트 참조한 외계인에 대한 묘사는 익숙한 쾌감을 안긴다.

◆ 어차피 지구를 지키는 건 미국의 영웅들

하지만 참 특이하게도 도무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엄청난 우주전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지구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건만, 긴장은커녕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다. 어차피 미국의 영웅들이 지구를 지킬 거란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희생되는 지구인의 고통과 공포를 담지 않는다. 대통령 등 정부요인이 외계인에게 학살되는 장면도 일부러 생략해버린다. 영화는 우주전쟁과 재난으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 않다. 주로 상황실에서 작전을 지휘하거나, 전투기를 몰고 영웅적인 결단을 내리는 파일럿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우주 전쟁이 펼쳐져도 어차피 미국 영웅들이 지구를 지킬 거라는 결말에 큰 긴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평범한 지구인들로 부모의 생사를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데이빗 박사의 아버지를 만나 스쿨버스를 탄 채 우주 무용담을 듣고, 사파리 여행을 즐기듯 외계인과의 전투를 구경한다. 그리고 인자한 어른들에 의해 안전하게 인도된다.

영화는 할리우드 특유의 영웅담과 긴박한 와중에도 한갓진 농담을 해대는 화기애애함을 담는다. 소심해보이던 관료가 어느새 외계인 킬러로 거듭나는 우쭐함이 영화전체의 정서이다. 이를테면 놀이동산의 짜릿함과 만족감을 안기는 것이다.

전편에서 “이제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인류의 독립기념일이 되었다”는 낯간지러운 연설은 속편에서 “국적, 인종, 종교를 불문하고 인류가 하나 됨”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영화에는 아프리카 반군족장, 중국인 달기지 사령관과 미녀 파일럿, 그리고 프랑스인 우주정신의학자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아프리카 반군족장이 외계인들과 어떤 접촉을 해왔는지는 몇 마디 대사로 갈음되고, 프랑스인 정신의학자가 풀어놓는 지식은 약간의 밑밥으로 쓰일 뿐이다. 중국인 사령관과 미녀 파일럿의 출연분량은 민망한 수준이다.

해결사 군단에 국적과 인종을 대충 섞어 넣는 비빔밥 전법은 몹시 한심해 보인다.

◆ 20년 전 ‘인디펜던스 데이'를 본 올드 관객과 게임 세대가 한 자리에

결국 결정적인 역할은 미국인 영웅가족의 몫이다. 즉 전편부터 영웅이었던 미국의 전직대통령과 그의 딸과 딸의 약혼자, 그리고 미국의 과학자와 그의 아버지가 열일을 해낸다. 결국 핵심적인 인물의 구도는 바뀌지 않은 채, 구색 맞추기 식으로 아프리카 족장과 프랑스 학자와 중국인 파일럿이 들러리를 선셈이다.

‘인디펜더스 데이2’가 무언가의 화합에 부합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세대 간 화합일 것이다. 전편의 출연진들과 할리우드 젊은 피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20년 전에 보고 비주얼 쇼크를 먹었던 영화의 속편을 더 큰 스케일과 더 정교한 그래픽 기술로 감상하면서 안정된 향수를 느끼고픈 중년층과 갖가지 우주전쟁을 게임으로 즐기다가 IMAX 큰 화면, 3D, 4D로 즐기려는 청년층이 한마음으로 극장에 모인다.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가 ‘자가 중력’처럼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영화라기보다는 4D체험관 영상물 같다.

◆ 황진미는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관념적이고 아카데믹한 영화 비평이 대세이던 시절에, 평론가들이 무시하는 대중 영화들을 ‘일상 언어'로 참신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받았다. 현재 ‘씨네21’ ‘엔터미디어’ 등 여러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칼럼 타이틀에 대한 아이디어로 ‘황진미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황진미의 영화로운 삶' ‘황진미의 훅가는 영화'를 제안할만큼 유머와 한방이 있는 글쓰기로, 앞으로 조선비즈의 ‘영화 리뷰'란을 채워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