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0만년 전 떨어진 운석은 원반 형태의 암흑 물질
미모의 물리학자가 말하는, 암흑 물질과 공룡의 연결고리

'암흑 물질과 공룡' 저자 리사 랜들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그는 하버드대 석좌교수팀과 함께 66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시킨 것은 암흑 물질이었다는 이론을 밝혀냈으며 책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6500만년전 갑자기 공룡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 거대 운석이 충돌했기 때문이란 이론이 힘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 운석이 왜 지구에 떨어졌을까란 질문을 던지는 한 여성 과학자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이자, 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Randall·54)이 저서 ‘암흑 물질과 공룡’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랜들 교수는 1999년 ‘비틀린 여분 차원’이라는 논문을 통해 전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 됐다.

랜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암흑 물질이 공룡을 어떻게 멸망시켰는지 설명한다. 책 전체를 놓고 보면 공룡 멸종 시나리오는 은하계 구조에서 암흑물질 원반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공룡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멀게만 느껴지는 은하계의 구성과 인류가 생각보다 깊이 관련을 맺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론물리학은 물리학적 세계에 대한 수학적 모형을 수립하여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다. 대표적인 이론물리학자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과학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히기 때문에 천재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학문이라고들 한다. 미드 ‘빅뱅이론’에 나오는 이론 물리학자인 쉘든은 종종 동료인 하워드에게 ‘엔지니어는 멍청하다’고 놀리곤 한다.

‘물리학의 여신’이라는 수식어답게 리사 랜들은 금발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기자들 앞에 등장했다. 미드 ‘빅뱅이론’에 나오는 이론물리학자인 괴짜 쉘든과는 다르게 소탈한 모습이었다. ‘여신’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랜들 교수는 “처음 듣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리사 랜들 교수는 “태양계에 암흑 물질로 이뤄진 원반이 있고, 그 원반이 태양으로부터 멀리 있던 천체를 이탈시켜 재앙 같은 충돌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암흑 물질은 현재 물리학과 천문학,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에서 과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분야다. 빛 같은 전자기파와는 상호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암흑 물질을 볼 순 없지만, 이 물질이 발휘하는 거대한 ‘중력’은 느낄 수 있다.

그동안 과학계의 암흑 물질 연구는 구성 물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성질이 무엇인지를 추정하는 정도에 그쳐왔다. 랜들 교수는 암흑 물질을 과학 탐구의 영역에만 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개인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오고자 했다.

미국의 이이론물리학자 리사 랜들이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방한 기념으로 특별 출간한 '암흑 물질과 공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암흑 물질 공룡 학살설’은 이런 그의 첫 번째 시도다. 랜들 교수는 “암흑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 뭉칠 수 있고, 밀도가 높고 낮기도 한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라며 “우주에서 70%나 차지하는 이 물질이 대체 무엇이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문학, 입자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겨우 20세기 말에 들어서야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암흑 물질을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단지 미지의 존재에 국한돼 있던 암흑 물질이 지구 그리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랜들 교수는 우리 은하에 기체와 별로 이뤄진 밝은 원반이 있다고 본다. 이 안에 상호작용하는 암흑 물질로 이뤄진 더 밀도 높은 원반이 담겨 있는데, 공전하던 태양계가 암흑 물질로 이뤄진 원반을 통과할 때 지구 주변을 평화롭게 돌던 혜성이 흔들리면서 궤도가 뒤틀려 지구와 충돌했다는 것이다.

이 도시 하나만 한 거대한 천체는 지구로 떨어졌고, 이 격변으로 인해 공룡들이 멸종했다는 것이 그의 가설이다. 암흑 물질이 이렇게 공룡들을 죽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포유류가 널리 서식할 수 있었고, 우리가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랜들 교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옳은지 그른지는 앞으로 검증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모델빌더(이론과 가설을 만드는 학자)’”라며 “일단 현재까지의 과학적 발견을 통해 가설을 제시한 것뿐 확인하고 입증하기까지는 먼 길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랜들 교수는 17일까지 열리는 ‘새로운 물리학 한국연구소(NPKI)’ 주최 학술대회 참석할 예정이다. 012년 설립된 NPKI에는 고려대·한국과학기술원(KAIST)·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등의 소장 입자물리학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