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반지의 제왕' 터지나...블리자드의 전설의 게임 '워크래프트', 첫 영화화
'오크 대 인간' 단순 구도 벗어나… 전쟁과 평화에 관한 심오한 메시지
육중한 몸, 정교한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한 오크족 시각화 볼거리

각종 영화예매 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환타지 블록버스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6월 9일 개봉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으로 유명한 블리자드사의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94년에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이 첫 출시된 이래 4편의 시리즈와 8번의 확장팩이 발매되었고,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여러 권의 소설이 출판되었다.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반지의 제왕’처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적인 판타지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미 전 세계에 1억 명이 넘는 사용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 시리즈의 영화화는 일대 사건이다.

게임 원작 영화는 2000년대 초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등이 흥행하면서 열풍이 일기도 했지만, 한동안 흥행실패로 제작이 뜸해졌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워크래프: 전쟁의 서막’이 개봉한 것이다.

2006년에 할리우드 제작사 레전더리가 영화화를 발표하고, 블리자드사가 제작에 합류한 이래 10년 만의 결과다. 블리자드사는 이번 영화의 성패에 따라, 후속작은 물론이고 다른 게임의 영화화도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오크!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일단 합격점이다. 오크족이 사는 황폐한 땅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배경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의 땅은 중세유럽을 연상시키는데, 특히 도서관의 공간묘사가 환상적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오크족 그 자체. 육중한 몸매에, 정교한 모션 캡쳐 기술을 활용한 생생한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아바타' ‘혹성탈출' ‘정글북'에 비견할만한 비주얼의 성취를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났다는 점도 놀랍다. 인간과 오크의 전쟁을 그리면서도, 인간과 오크를 선-악 혹은 문명-야만의 대립구도로 놓지 않았다는 것.

예컨데 인간과 오크가 등장하는 판타지 전쟁물을 만들 때, 가장 손쉬운 구도는 이런 식이다. 여기 선한 문명을 건설한 인간 공동체가 있다. 이들을 파괴하려는 악하고 야만적인 오크족이 쳐들어온다. 인간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싸우고, 오크족 역시 순연한 악으로 뭉쳐있다. 여기에 인간에게만 신(神)이나 대의, 혹은 가족 로맨스 등을 끼얹으면 흔한 영웅물이 탄생한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 오크가 인간세계를 침범하는 건 맞지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크족의 겉모습은 거칠고 야만적이고 호전적이지만, 그들은 전사의 명예와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영화에서 오크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작품의 방향은 블리자드사가 고집한 것이다. 처음에 레전더리사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을 내세워 ‘나쁜 오크들에 맞서는 착한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블리자드사의 거부로 감독이 하차하고, 2013년에 워크래프트 마니아인 던칸 존스 감독을 영입해 오크 대 인간의 비중을 5:5로 맞췄다. 영화는 오크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동등하게 그린다. 오크족 전사 듀로탄과 인간족 전사 로서가 서사의 두 축을 담당한다. 오크족의 독재자 굴단과 인간계 최고 마법사 메디브가 결탁하여, 인간세계와 오크세계를 연결하는 ‘어둠의 문’이 열린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좋은 예로 거론되고 있는 ‘워크래프트'.

◆ 전쟁을 막으려는 세력이 선이고,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악이다.

영화에서 선과 악은 내부와 외부로 나뉘지 않는다. 오크족은 오크족대로 내부문제를 지니며, 인간족은 인간족 대로 내부균열을 갖는다. 땅의 황폐화를 고민하던 듀로탄은 오크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굴단은 듀로탄을 반역자로 몰아 해당종족을 학살하고 전쟁에 나서게 한다.

그런데 애초 땅이 황폐해진 이유는 굴단의 ‘지옥마법’ 때문이다. 생명을 자원으로 사용하는 ‘지옥마법’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모든 것을 타락시킨다. 메디브는 인간계의 수호자지만, 어둠의 기운에 사로잡혀 오크족의 침입을 불러들인다.

영화에서 가장 숭고한 장면은 전장에서 포위된 인간의 왕이 결단하는 순간이다. 그는 자기 목숨을 제물로, 인간과 오크 사이에서 태어난 가로나에게 두 종족의 화합을 맡긴다. 그러나 왕의 죽음은 오히려 확전을 불러온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환타지 블록버스터지만 선과 악, 오크와 인간을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는 입체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진정한 선은 무엇이고, 진정한 악은 무엇인가. 인간이든 오크든, 그건 중요치 않다. 전쟁을 막으려는 세력이 선이고,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악이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오크가 등장하는 판타지 전쟁물이지만, 전쟁과 평화에 관한 가장 진실하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는다. 21세기 종합예술, 게임의 세계를 다시 볼 일이다.

◆ 황진미는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 근무하던 중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관념적이고 아카데믹한 영화 비평이 대세이던 시절에, 평론가들이 무시하는 대중 영화들을 ‘일상 언어'로 참신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받았다. 현재 ‘씨네21’ ‘엔터미디어’ 등 여러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칼럼 타이틀에 대한 아이디어로 ‘황진미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황진미의 영화로운 삶' ‘황진미의 훅가는 영화'를 제안할만큼 유머와 한방이 있는 글쓰기로, 앞으로 조선비즈의 ‘영화 리뷰'란을 채워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