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가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헤지펀드 상품이 하루 만에 동났다. 최소 투자 금액은 10억원. 웬만한 확신 없이는 선뜻 맡기기 어려운 돈이다. 두 증권사가 각각 1500억원씩 총 3000억원어치를 팔기로 계획했는데, 투자자가 밀려드는 바람에 서둘러 판매를 마감해야 했다.

국내 자산가들 사이에 한국형 헤지펀드 투자 바람이 부는 가운데, 지난 4월 운용사 등록을 마치고 이제 막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인기의 중심에 섰다. 황성환(40) 타임폴리오 대표는 서울대 공대 재학 시절, 각 증권사가 여는 투자수익률 게임에서 수차례 우승을 휩쓸며 여의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자자문사, 자산운용사를 차례로 일궜다. 그는 "자문사 때부터 치면 6개월 결산 기준으로 지난 26기(13년) 동안 한 번도 손실을 낸 적 없고, 금융 위기, 유럽 재정 위기로 시장이 출렁인 해에도 플러스 수익을 냈다"며 "고객들이 이 신뢰를 사준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수익률로 이름을 알렸지만 "고객에게 목표 수익률을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며 "'어떤 경우에도 고객 돈을 안 까먹겠습니다'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만에 헤지펀드 투자금 3000억원을 모아 화제가 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황성환 대표는 “주가가 제 가치를 반영할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식의 투자는 싫다. 지금 당장 제일 좋은 주식, 주가가 움직일 ‘타이밍’에 이른 주식만 골라 펀드에 담는다. 주식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타임폴리오, 무슨 뜻인가.

"타임(Time)과 포트폴리오(Portfolio)를 합친 말이다. 올라가거나 내려갈 '타이밍'에 근접한 종목만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겠다는 뜻이다. 주가가 언젠가 본연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 언제가 대체 언제이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제일 좋은 주식을 사야 한다고 본다. 우리 투자 철학을 사명(社名)에 녹였다."

―'개미'에서 '투자가'로 변신한 스토리가 흥미롭다.

"97년 군 복무 중에 홀아버지가 급성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형제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이 1600만원뿐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이 돈으로 신림동 옥탑방을 얻고 과외·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닥치는 대로 종잣돈을 모았다. 군대를 다녀오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고, PC방이 곳곳에 생겼고, 사람들이 PC방에서 주식투자를 하더라. 나에게도 돈 벌 기회가 있겠다고 느꼈다. 99년 주식 공부를 시작해 2000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증권사 투자대회도 이때 집중적으로 나갔다. 주식으로 수익이 나면 그것도 자산이고, 잘해서 상금까지 타면 그것 역시 자산이 되니 일거양득을 노렸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삼성전자가 하한가를 기록하던 순간을 띄워놓았는데…

"베어마켓(약세장)에서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잊지 않기 위해서다. 2001년 9·11 테러 다음 날 삼성전자가 장중 하한가를 기록했다. 공포가 극에 달할 때를 내 눈으로 목격하니 충격적이었다. 2000년에도 연초 3000포인트까지 갔던 코스닥시장이 연말 500까지 6분의 1 토막이 나는 걸 봤다. 주가가 제 가치보다 오버슈팅(과도하게 올라감)·언더슈팅(과도하게 내려감)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배웠다. 공포에 사서 진정되면 파는 투자를 반복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때도 이런 순간이 왔다. 패닉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기회를 포착해 수익을 많이 냈다."(종잣돈 1600만원은 수천억원이 됐다).

―지금은 어떤 투자 기법을 쓰고 있나.

"현재는 펀드 자금의 절반을 '롱숏(상승 예상 종목을 사고, 하락 예상 종목을 공매도하는 것)'으로 투자한다. 절반은 기회가 있을 때 '롱 온리(매수만 하는 것)'로, 기회가 없을 때는 유동성(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색깔'이 없는 시장이고 방향성을 알 수 없으니 롱과 숏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다 한쪽으로 돈이 쏠리고 누가 봐도 주도주가 보이는 때가 오면 오를 주식을 담아 수익을 극대화할 생각이다."

―타이밍을 잡기 위해 어떤 뉴스에 주목하나

"특정 업종이 안 좋다는 컨센서스가 깔려 있어 모두가 그 주식을 버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해본다. 이런 주식에선 약간의 모멘텀(동력)만 있으면 주가가 많이 튀어오를 수 있다. 모멘텀의 크기가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느냐보다, 대중이 어느만큼 쏠려 있느냐를 본다. '5'밖에 안 되는 모멘텀에 대중이 한쪽으로 '10~20'만큼 쏠려 있다면 기회가 올 가능성이 크다. 실적이 안 좋다는 컨센서스가 깔렸을 때, 이번 분기보다 다음 분기가 조금이라도 좋을 수 있나? 작년 같은 분기 대비 다음 분기가 조금이라도 좋을 수 있나? 따져본다.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큰불이 난 적이 있다. 납기를 못 맞출 수 있는 상황이고, 보험에 들었더라도 악재가 분명했다. 주가가 빠졌다. 하지만 며칠 뒤 곧 전고점을 회복했다. 업황이 내 생각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역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런 역발상을 통해 타이밍을 잡는 투자를 좋아한다."

―많은 펀드매니저가 헤지펀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타임폴리오에도 이력서가 쌓이고 있다. 헤지펀드는 지금부터 르네상스 시대라고 본다. 공모 펀드는 그 나라 시장의 성장을 사는 것인데, 한국 경제성장률이 2%대, 금리는 1%대다. 공모 펀드에 투자해선 돌아올 돈이 얼마 안 된다는 걸 고객도 아는데 펀드매니저들은 더 잘 알지 않겠나. 점점 사모(私募) 시장이 커질 것이다. 미국도 이런 전철을 밟아왔다. 똑똑한 인력들이 사모 시장으로 옮겨가면 돈도 따라 움직일 것이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지원자의 90%가 '워런버핏 워너비(wannabe·따라 하고 싶은 대상)'들이라는 점이다. 버핏은 분명 훌륭한 투자자이지만, 지금 그런 투자가가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코카콜라 주식을 사면 버핏이 올린 수익을 절대 못 낸다. 버핏은 고(高)성장 시대를 살아온 분이다. 하지만 '장기투자하면 주가는 가치에 수렴한다'는 철학에 빠져 있는 젊은 친구가 많다. 경쟁이 심해지고 시대가 변하면 그 '가치'도 변할 수 있다. 당장 어떤 쪽에 돈이 몰릴 것인가, 어떤 쪽에 기회가 있나를 포착할 눈이 더 필요하다. 이런 기회를 찾아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게 펀드매니저의 역할이라고 본다. 매매회전율 낮은 펀드가 좋다? 이런 인식에도 동의 못 한다. 더 열심히 찾아서 더 많이 벌어주면 그게 나은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