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3일 발표했다. 환경부는 당초 경유차와 석탄화력발전소를 미세먼지 급증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경유값 인상, 노후 발전소 폐쇄 등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민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정부의 기존 에너지 수급 대책과도 충돌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반발을 샀고, 결국 노후 경유차의 운행을 일부 제한하고 노후발전소를 과감하게 축소하겠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미세먼지 대응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가 가진 미세먼지에 대한 분석에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성급하게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일대에서 차량 배출가스를 포집하고 있다.

◆ 미세먼지 주범으로 경유차 지목한 정부

황교안 국무총리는 3일 미세먼지 특별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최근 경유차가 미세먼지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노후 경유차의 수도권 진입을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미세먼지 문제가 제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세먼지는 지난 수십년 동안 꾸준히 제기되던 문제다. 특히 황사와 스모그 등이 많이 나타나는 봄철마다 호흡기 질환자가 느는 등 국민 건강 문제가 대두했고,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올봄 미세먼지 농도(PM10 기준)가 ‘나쁨’이나 ‘매우 나쁨’ 상태인 날이 많아지며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3월을 기준으로 지난 2013년 5일이었던 ‘나쁨’과 ‘매우나쁨’ 일수는 2014년 8일로 늘더니 지난해 10일로 더 늘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3월에는 나타나지 않던 매우나쁨 상태가 지난해에는 이틀이나 나온데다, 흡입하면 폐포(허파꽈리)까지 직접 침투한다는 초미세먼지(PM 2.5)의 주의보가 올해만 60번 이상 발령되자 국민의 불안감이 커졌다.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시간평균농도가 90㎍/㎥ 이상 2시간 지속될 때 발령되는데, 24시간 평균치 50㎍/㎥ 이하가 정상이다.

미세먼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미세먼지를 줄일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경유차와 노후 시설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지목하고, 당장 이들을 제한할 방안들을 검토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과학자들 "올봄 미세먼지 주범, 경유차라는 증거 없어"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점과 정부가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않고 경유차와 화력발전소부터 손대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전 대한화학회장)는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노후 경유차는 문제일 수 있지만, 환경부 과거 발표만 봐도 지난 2012년 전국 모든 자동차에 의해 배출된 미세먼지(PM 10)는 총 배출량의 6%인 1만4000톤에 불과했다”면서 “타이어 마모 등 때문에 도로에 있다 날아오른 비산(飛散) 먼지는 8배가 넘는데 경유차를 주범으로 몰아간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경유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NOx)이 미세먼지를 일으키기 때문에 경유차를 덜 써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도 반박했다.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원인인 질소산화물을 많이 내뿜기는 하지만 일산화탄소나 탄화수소의 배출량이 훨씬 적고, 무엇보다도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도 가솔린이나 LPG보다 적게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배출가스 중 어떤 것이 더 나쁜지는 따져봐야 한다”면서 “미세먼지 잡겠다고 온실가스를 늘려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기과학자들도 현재 미세먼지에 대한 원인 분석을 먼저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전 KIST 원장)은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을 내뿜기는 하지만, 이 원인 물질이 미세먼지가 됐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정확한 분석을 하지 않고 대책을 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경유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가 되려면 대기중에서 자외선(UV), 유기물질과 반응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자외선이나 유기물질이 함께 늘었는지 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턱대고 경유차를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지적했다. 질소산화물이 미세먼지로 변하지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또 바람이 이전보다 덜 불어 미세먼지가 날아가지 못하고 떠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전혀 없다고 문 총장은 덧붙였다.

문 총장은 “하루가 다르게 기후가 변하고 산업구조도 바뀌는데 3년 전 연구결과를 근거로 오늘을 해결하려는 정부를 보니 답답하다”면서 “대책을 내놓는 것보다 믿을만한 분석 결과를 먼저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인 중국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국내 배출자만 탓하는 것도 문제”라면서 “일본, 중국과 질소산화물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는 등 국제공조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