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사내 창업 지원 조직인 C랩에서 설립된 5개 사내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을 분사해 독립시킨다고 31일 밝혔다. 작년 9개에 이어 올해 5개가 더 분사하면서 삼성전자 출신 스타트업은 총 14개로 늘었다. 삼성전자 이재일 상무는 "현재까지 130여개의 C랩 과제가 선정돼 480여명의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4∼5개 스타트업이 추가로 분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LG전자·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사내 벤처나 기존 사업을 떼내 독립시키고 있다. 스타트업의 유연한 조직 문화를 활용해 사내 혁신을 북돋고, 대규모 투자 기회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적은 투자로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는 시도로 관측된다.

◇삼성, 14개 기업 분사…하반기에 또 나와

삼성전자에서 이번에 분사하는 벤처기업들은 스마트 기기부터 앱, 건축자재까지 다양하다. 웰트는 허리둘레와 활동량을 측정해 비만을 막아주는 스마트벨트를 개발했으며, 망고슬래브는 입력한 문구를 포스트잇으로 출력해 주는 '아이디어 프린터'를 만들었다. 에임트는 유리섬유로 만든 건축용 진공단열재를 개발했다. 과장 출신인 강성지 웰트 대표는 "삼성 입사 전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은 작년에도 C랩에서 총 9개사를 분사했다. 통화음을 진동으로 전달하는 '스마트 시곗줄'을 만든 이놈들연구소는 중국의 벤처 투자업체 창업방·DT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걸음걸이나 운동 자세를 교정해주는 스마트슈즈를 개발한 솔티드벤처도 미국 CES(소비자 가전쇼)와 유럽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참가해 수주 실적을 거뒀다.

LG전자도 안승권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전자 액자와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기 사업을 분사한다고 최근 밝혔다. 전자 액자를 만든 에이캔버스는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서비스인 '킥스타터'에서 300여명으로부터 12만5074달러를 유치했다.

◇아이디어 사장 막아라…사업 효율성 위한 분사도

사내 벤처는 인터넷 업체들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네이버는 2013년 캠프모바일을 독립시켰다. 폐쇄형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밴드'를 운영하는 업체다. 지난해에는 웍스모바일을 기업용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문서 관리 소프트웨어 등을 제공하는 전문 업체로 분사시켰다. 온라인·모바일 만화 서비스 '웹툰'도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분리해 독립 경영하고 있다. 카카오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쓰는 캐릭터를 인형·스티커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카카오프렌즈를 분사해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의 사내 벤처가 활성화되는 것은 불투명한 경기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창업을 돕는 '작은 투자(little bet)'로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선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웹툰이나 카카오의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은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는 성격이 달라 독립해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분석도 있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경영학)는 "분사를 하면 기존 대기업은 조직을 효율화할 수 있어서 좋고 분사된 기업은 유연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분사를 시장을 테스트해 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