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이것 좀 봐주세요. 다른 데서 수선했는데 영 몸에 안 맞아요."

지난 24일 오후 2시쯤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4층 에스컬레이터 옆의 3.3㎡(1평) 남짓한 옷 수선실에선 탈북민 정혜영(46) 사장이 수선을 맡기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매장 앞에는 손님들이 맡긴 옷들과 리폼을 마친 청재킷·청치마 등이 가득 걸려 있었다. 매장에서 능숙하게 손님을 맞으며 재봉틀을 돌리는 정씨는 입국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탈북민이다.

그는 함북 청진의 김책제철소에서 근무하다가 1999년 북·중 국경을 넘었다.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삶도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통하는 중국인 남편을 만나 아들딸까지 낳았지만, 남편은 2008년쯤 암으로 사망했다. 정씨는 "남편도, 국적도 없는 중국에서 더는 살 수가 없었다"며 "아이들에게 '1년만 기다리라'는 약속을 하고 2014년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탈북민 정혜영 사장이 지난 25일 오후 매장에서 옷을 고치며 웃고 있다. 2014년 입국한 정씨는 매장 5곳을 관리하며 탈북민 6명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정씨는 입국 뒤 바로 탈북민 지원 단체가 실시하는 의류 수선·리폼 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려면 반드시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 학원 수업이 끝난 뒤에도 밤늦게까지 학원에 남아 재봉틀을 돌렸다. 방 한 칸 집에 혼자 있으면 중국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워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 제철소에서 근무할 때도 인정받았던 정씨의 성실함은 남한 사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빠른 속도로 재봉 기술을 익혔고, 2014년 12월 롯데마트 서울역점 수선실의 직원으로 채용됐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 정씨에게 '기회'가 왔다. 서울역점 점주가 매출이 낮다는 이유로 점포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정씨의 솜씨와 성실함을 잘 아는 학원 지인들도 "무모하다"며 반대했지만, 정씨는 자신을 믿기로 했다. 그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선 기술을 배워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못할 게 뭐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국에 남겨둔 아들딸을 데려오기 위해서도 정착해야 했다. 정씨는 중국에서 15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 4000만원을 모두 투자했다. 성실이란 씨앗이 성공이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첫 두 달은 임차료와 직원 월급을 주고 나니 남는 돈이 없었다. 정씨는 "중국서 데려온 아이들은 대안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국가가 지원해준 임대아파트 덕분에 처음의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8월 점포를 처음 인수했을 때는 '북에서 온 사람이 남한 옷을 어떻게 고치느냐'고 묻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정씨는 "북에서 태어났지만 기술은 한국에서 배웠으니 맡겨만 달라"는 대답으로 일감을 끌어왔다. 고개를 갸웃하며 옷을 맡겼던 첫 손님들은 이젠 단골이 됐다. 일감을 소개해주는 손님도 생겼다. 매출은 인수 때보다 2배쯤 늘었다.

지금 정씨는 서울역점을 포함해 수선실 5곳을 관리하는 '진짜 사장님'이 됐다. 전체 직원 12명 중 6명이 정 사장처럼 탈북민이다. 그는 "앞으로 다른 탈북민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가게 차릴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방송대 의상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올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듣던 정씨는 "방송대 수업도 정부 지원 덕분에 무료"라고 했다. 그는 "단골손님, 정부의 교육·주거 지원, 노력한 만큼 대가를 주는 남한 사회가 고마워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 은혜를 갚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다른 탈북민도 거창한 꿈에 집착하지 말고 무슨 기술이라도 익혀서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하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