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해양에서 관리직으로 일했던 김모(40)씨는 지난해 말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회사가 5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여파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집안은 휘청였다. 재취업이 안된 탓에 집도 팔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10년 이상은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은행돈으로 넓은 집을 샀는데 후회된다"면서 “아무 생각 없이 보험도 잔뜩 들어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 직장인 윤모(44)씨는 2000년대 중반 지방의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다가 2배 이상 차익을 남기고 되팔았다. 자신의 부동산 투자 실력이 뛰어나다고 믿은 윤씨는 아파트 매도금에다 대출을 받아 서울 시내의 재개발 지역에 투자했다. 하지만 재개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난항에 빠졌고, 윤씨는 매달 100만원의 대출 이자를 내느라 허덕이고 있다. 윤씨는 “퇴직 전까지 재개발이 마무리돼야 하는데 진척이 없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오른 이때,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양호한 가계도 구조조정에 나설 시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계부채는 기업부채에 비해 연체율 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양호하지만, 추후 소득 절벽시기에 대비해 미리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은 “최근 들어 생활비를 위한 ‘악성 소비형 부채’가 늘고 보험 해약이 증가하는 등 가계 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태”라며 “추후 소득 절벽이 닥쳤을 때의 충격을 줄이려면 채권은행이 기업을 실사하듯 가계도 스스로 재무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 가계 빚 역대 최고… 1분기 증가액도 사상 최대

기자는 지난 27일 자산관리 상담업체 4곳에 전화를 걸어 재무 상담을 받아 보았다. 전문가들은 전세금 상승이 부담스럽다고 고민하는 기자에게, 대출 금리가 저렴하니 깊게 고민하지 말고 부동산 투자에 나서라고 입을 모았다. 일명 갭투자(전세 끼고 집을 사는 투자법)였다.

한 재무 상담업체 대표는 “고객 중 한 젊은 남성은 2014년부터 서울 시내 아파트를 5채 매매해서 억대 수익을 거뒀다"면서 “지금은 2년 전에 2억6700만원 주고 산 아파트를 보유 중인데 세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을 제하고도 4500만원 수익이 난 상태"라고 했다. 요즘처럼 금리가 쌀 때 대출을 받지 않는 것은 손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경제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빌리는 생계형 대출에다 아파트 분양 관련 집단대출, 이런 식의 투기성 대출까지 가세하면서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223조7000억원으로 2015년 말(1203조1000억원)보다 20조6000억원(1.7%) 증가했다. 20조원은 2002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1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현재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근거는 크게 2가지다. 분할 상환 등 처음부터 갚아나가는 대출 비중이 높아졌고 연체율은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분할상환대출 비중은 2월을 기준으로 76.9%까지 올랐다. 지난해 연중 평균은 62.4%가량이다. 3월 기준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27%에 그친다.

다만 가계부채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위험 요인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부채도 조선, 해운 등 일부 영역이 유독 더 위험하듯 가계 또한 전반적으로는 괜찮지만 고령자 대출, 자영업자 대출, 저소득자 대출, 제2금융 대출 등 세부적으로 보면 위험한 영역들이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나 높은 전세가만 믿고 과도한 수준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전세 가격이 치솟으면서 서울 강북 일대는 1억원 안팎의 자금으로도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 2억~3억원의 자금으로 아파트를 여러채 구매하거나, 일단 구입한 뒤 은행 대출을 받고 월세를 받는 투자가 늘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보다 본격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갑자기 희망퇴직으로 내몰리는 직장인들도 많기 때문에 미리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보험 해약 늘고 있어…“분할 상환이라고 무조건 안전한 것 아냐” 지적도

보험 해약이 늘고 있는 것도 가계 건전성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2012년과 2013년, 12조원 가량이었던 보험 해약금은 2015년 들어 18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보험 해약은 은행 예금 해약 등에 비해 손실이 큰 편이라 보험 해약이 늘어난다는 것은 가계가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생명보험사 연도별 생명보험 효력 해지 상실

분할상환 비중이 높아진 것 또한 무조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30~40대 직장인이 30년 안팎의 장기 분할상환 주택대출을 받을 경우 퇴직 후 원리금 상환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의수 돈걱정없는우리집지원센터장(재무설계사)은 “분할상환 기조가 정착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이지만 상당수 대출자의 사례를 봤을 때 원리금을 완전히 갚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적지 않은 대출자가 대출 만기 전에 퇴직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분할상환에 착시를 일으키지 말고 대출을 꼭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원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소득이 아니라 평생평균소득을 기준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계산해 주택대출을 받는 등 총체적인 비용 관리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과거와 달리 부채를 일으켜 투자한다고 해서 집값이 오를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저성장 시대’에 맞는 대출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