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 점심 메뉴는 자체 개발 앱을 통해 선정
손 떨림과 동공 확대 정도, 숨소리를 통해 먹고 싶은 메뉴 순위 나와

오전 10시 30분, 기술분석 3팀의 팀원들은 모두 회의실에 모여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숙한 얼굴의 팀장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민서 씨, 우리 큰 화면으로 봅시다.” 불과 몇 달 전에 들어온 신입사원 박민서는 조금은 긴장한 낯빛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텔레비전을 켰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던 13명의 팀원들이 일제히 얼굴을 들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던졌다.

“음, 1순위는 메밀국수구먼. 앗, 아니군. 성민 매니저의 메밀 알레르기 때문에 메밀국수는 자동 제외고, 그럼 크림파스타가 오늘의 점심 메뉴로 결정됐네.” 팀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뭘 먹고 싶은지 자신들도 애매할 때 구체적으로 메뉴를 알려 주니, 점심 메뉴 발표 후엔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팀장이 회의 마치기 전 한마디를 덧붙였다.

“성민 군, 물론 이건 회사 일은 아니지만…… 화면 UI를 좀 바꿔 주면 안 되겠나? 최종 1위가 된 메뉴를 먼저 볼 수 있게. 이거 볼 때마다 헷갈려서 말이야. 그럼, 고려해 주게.” 기술분석 3팀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렇게 팀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메뉴 선정이 늘 문제였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이성민이 나서서 앱을 개발했다.

엄성훈 그림

집에서 쉬는 시간에 ‘점심 메뉴 팀원 결정권’이란 앱을 만든 것이다. 개발 취지는 ‘다수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 보자’이자, ‘메뉴를 고를 때 에너지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정말 먹고 싶은 것을 찾아보자’였다. 현재 그의 회사 모든 팀들이 이 앱을 애용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렇게 회사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앱을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회사들은 기획력과 개발력을 동시에 갖추지 못한 사람을 애초에 뽑지도 않았다.

‘점심 메뉴 팀원 결정권’ 앱을 실행하면, 사무실 근처 식당의 거의 모든 메뉴가 이미지와 함께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간다. 그러면 스마트폰은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의 손 떨림과 동공 확대 정도, 숨소리를 감지한다. 주파수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으로 숨소리를 해석해, 식욕과 스트레스 지수로 값을 바꾸었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통해 팀원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1순위부터 3순위까지 뽑고 전체 결과를 합산하는 것이다. 공평하게 처리하기 위해 결정권에는 직급에 따라 가중치를 두지 않았고, 알레르기 등으로 못 먹는 음식은 미리 개인이 설정하게끔 해두었다.

12시가 되자, 기술분석 3팀의 사람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민서의 옆으로 3년 선배인 이정임이 살짝 다가와 들릴듯 말 듯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너무 눈치 볼 것 없어.” “네?” 민서는 뜨끔한 얼굴로 정임에게서 슬쩍 몸을 뗐다.

“그렇게까지 팀장님 눈치 볼 것 없다고. 아까 팀장님이 메뉴에서 메밀국수를 제외할 때 성민 선배 알레르기 탓을 했지만, 사실 팀장님도 메밀 알레르기 있잖아. 자기도 이 사실을 알고서 일부러 메밀을 알레르기 유발 음식으로 지정한 거 아냐? 지난번에 자기가 메밀국수 집에서 맛있게 먹는 거 봤어. 먹고 싶으면 먹어. 눈치 보지 말고. 우리 회사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니까. 팀장님도 그러실 분이 아니고.”

정임이 몇 걸음 앞서 나간 다음, 민서는 홀로 남았다. 민서의 눈길이 흘러간 곳은 저 멀리 팀장과 나란히 앞서 걸어가고 있는 선배 성민의 등이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약간 고개를 숙였다. 정임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팀장의 눈치를 보고 일부러 메밀을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으로 설정해 둔 건 맞았지만,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 성민을 변호하기 위해서였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을 자동으로 제외하기로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성민만 메밀국수를 못 먹는다고 자꾸 거론되면 팀장이 싫어할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 사실 민서는 팀장이 메밀국수를 제외할 때마다 항상 아쉽다는 투로 얘기해 그가 메밀국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민서는 이젠 진실을 알게 됐으니 메밀을 자동 제외되지 않도록 설정을 바꿀까 싶었지만, 진짜는 아니라도 성민과의 공통점을 만들고 싶어 바꾸지 않고 두기로 했다. 혹시나 다음에 메밀국수 집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성민과 단둘이 따로 식사를 할 기회가 올 수도 있었으니까.

10년 후의 일상 | 편석준 지음
근미래 소설 '10년 후의 일상'의 작가 편석준은 IT대기업을 다니던 회사원이었다가 스타트업 창업을 한 CSO였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작가로서의 시간을 올곧이 보내며 인공지능 시대의 IT소설집을 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최종심에 응모작 3편이 오른 적이 있다. 총 33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