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한 달만 중단돼도 무너지는 중소 협력업체가 수두룩할 텐데, 황금시간대 방송을 6개월이나 중단시킨다고요? 공장 문 닫고 야반도주하라는 것도 아니고…."

롯데홈쇼핑에 소파 등 가구를 공급하는 H사 정모(55) 대표는 롯데홈쇼핑에 대한 미래창조과학부의 프라임타임(오전 8~11시, 오후 8~11시) 6개월 영업정지 조치 예고와 관련, "방송이 중단되는 순간 우리 목숨줄도 끊긴다"고 26일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홈쇼핑 재승인 과정에서 임원 비리 사항 등 주요 사항을 누락해 고강도 제재를 받을 예정이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20년째 경기 파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 대표는 "5년 전부터 롯데홈쇼핑에 납품을 시작해 거래 규모가 지난해 250억원까지 늘었다"고 했다. 전체 매출 중 70% 이상이 롯데홈쇼핑을 통해 나온다. 오후 9~10시에 방송하는 이 회사의 129만원짜리 4인용 소파는 한 달에 3000세트 정도 팔린다.

그는 "롯데홈쇼핑이 무슨 잘못을 했다면 롯데가 책임지도록 하면 되지, 왜 애꿎은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보게 하느냐"고 했다. "130명 직원 대부분이 한 달 200만원 정도 받고 고된 작업하는 현장 근로자들입니다. 방송이 끊기면 이들의 일자리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불똥 튄 중소 협력업체, 위기감 휩싸여

롯데홈쇼핑에 상품을 공급하고 판매하던 중소 협력업체와 직원들은 사업 차질과 고용 불안으로 극심한 불안감에 떨고 있다. 영업정지가 내려질 프라임타임은 홈쇼핑 채널의 매출이 집중되는 황금시간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점에 성공했지만 영업정지 처분 후폭풍에 대한 위기감에 휩싸인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현재 롯데홈쇼핑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협력업체는 850여 개며, 이 중 560개가 중소기업이다. 특히 중소기업 173개는 롯데홈쇼핑과 독점 거래하고 있다. 직접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롯데홈쇼핑의 프라임타임 시간대 매출은 총 1조934억원이고, 이 중 4423억원(40%)을 중소기업이 올렸다. 이 시간대에 나간 2700회 방송 가운데 중소기업 대상이 65%다.

프라임타임에서 영업하던 중소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우리가 비(非)프라임타임으로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이 시간대에 있던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밀려나는 도미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성 패션 의류를 제조하는 H사의 전모(50) 대표는 "베트남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과 가을·겨울 시즌에 맞춰 발주한 물량이 수십억원대"라며 "최소한 재고 물량을 소화할 시간만이라도 줘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롯데홈쇼핑 히트상품 1위 제품을 2년 연속 기록한 이 회사는 총 매출의 70%를 롯데홈쇼핑에서 올릴 정도로 롯데 의존도가 높다.

청국장 등 장류를 제조 판매하는 강원도 정선의 D영농조합은 당장 120여 지역 콩 재배 농가의 생계가 걱정이다. 이 조합은 전체 장류 생산량의 80% 이상을 롯데홈쇼핑을 통해 판다. 최근 한 회 방송 매출이 최대 10억원에 달하는 등 호조를 보이자 저온 저장고와 포장 시설 확충에 5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 경영관리팀장 최모(33)씨는 "20년 넘게 꾸려온 우리 조합이 문 닫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선의의 피해자 없도록 제도 개편 필요"

롯데홈쇼핑은 프라임타임 6개월 영업정지로 매출이 작년의 절반인 6616억원으로 줄어들고 영업이익은 685억원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지난해 사업 기간 2년을 단축한 3년짜리 조건부 재승인 허가를 받았는데, 여기에 프라임타임 6개월 영업정지를 더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라고 주장했다. 롯데홈쇼핑 측에서는 외부 위원들이 참가하는 청문 절차가 없이 진행돼 임원 비리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미래부의 이번 처분은 중소 협력업체들의 잠재적 피해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조치로 보인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내지 않고 제재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