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으로 엄청난 돈을 번 조영남식 '황금알 거위' 깨지다
'관행' 주장해도 노동 착취 정당화 안돼
조영남, 대작 작가 둘 다 돈 때문에 원칙을 져버렸다는 것은 동일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벤저민 프랭클린

대작 스캔들 속에서 칩거 중인 조영남. 사진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조영남의 청담동 저택 내부 작업실.

시골집 뜨락에 작약꽃이 한창이다. 한낮엔 종일 먼 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한가로웠다. 이 화창한 봄날을 지내며 내 속은 화창하지 못했다. 요 며칠 사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라는 한 문장이다.

노래도 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한 유명인이 제 전시회에 낼 작품을 한 무명화가에게 대작(代作)한 의혹이 느닷없이 불거졌다. 그는 나라 안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 짜한 가수인데, 최근 몇 년 사이 ‘화투’라는 오브제를 다양하게 표현한 팝아트 작품들로 전시회를 꾸리며 화가로도 제법 명성을 얻은 터였다.

유명과 무명, 독창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의 팽팽한 대결

헌데 그림들 상당수가 바쁜 그를 대신한 한 무명화가의 것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는 그를 적대하는 여론에 당황해서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변명했지만 그를 향한 비난이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들끓는다.
그의 항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화투' 그림의 아이디어는 그의 것이고, 무명화가는 그저 시키는 대로 그렸을 뿐이다. '독창적인' 것은 화가의 몫이고, 무명화가는 '기술적인 부분'만을 도왔으니, 그 작품의 소유권은 전적으로 제 것이라 했다.

아마 그는 앤디 워홀이라는 미국의 팝아트 작가를 떠올리며 ‘관행’을 들먹였을지도 모른다. 앤디 워홀은 저를 대신해 사람들에게 그림을 제작하게 시킨 뒤 자기 사인을 넣어 팔았다. 심지어는 사인하는 것마저 귀찮다고 더러는 제 ‘엄마’를 시켜 대신하게 했던 괴짜 화가다. 그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조영남’과 ‘앤디 워홀’은 예술적 기법과 철학의 차이뿐만 아니라 한 사람은 대작 사실을 숨겼지만, 한 사람은 그걸 만천하에 다 알게 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나는 그림 한 점당 대가로 지급한 ‘10만 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10만 원’이라니! 너무 어이없이 약소한 액수가 아닌가? 그렇게 값싸게 얻은 그림은 유명인의 사인이 새겨지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호가(呼價)하는 ‘작품’으로 둔갑한다.

최소의 노동과 최소의 시간을 투자해서 엄청난 이익을 냈으니 이보다 더 황금알을 낳는 투자가 어디 있을쏘냐! 내 주변 사람들은 그 유명인이 약자를 상대로 노동 착취를 했다는데 뜻을 모으고, 그 점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입을 맞췄다.

대작이 옳지 않다는 걸 과연 몰랐을까? 결국은 돈!

그가 해마다 노래로 벌어들이는 돈은 소시민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운 거액이 아니던가? 수십 억 원이 넘는 저택에서 잘 먹고 잘산다는 그가 왜 더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 전반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자랑하던 그가 아니던가? 특히 미술에 대해서라면 책을 집필할 정도로 전문 지식을 갖춘 그가 회화를 대작한다는 게 옳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결국 ‘돈’이다.

조영남의 ‘꽃과 콜라’

그가 ‘관행’이라고 한 것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이 ‘카지노 자본주의’의 속성을 콕 집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헐값에 남의 그림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무명화가의 딱한 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는 돈이 악의 근원이 아니라 그게 없다는 점에서 모든 악이 번성한다는 사실을,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불행의 종류를 결정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테다.

에머슨이라는 철학자는 “돈 때문에 원칙을 포기한 사람이 원칙 때문에 돈을 포기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라고 했는데, 두 사람 모두 돈의 유혹에 무릎을 꿇어 원칙을 저버린 축에 들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와 동기로 세상의 신뢰를 만드는 원칙을 거슬렀다.

가짜와 모조품들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이 원칙을 거스르며 속였다는 데서 대중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진정성에 대한 우리의 깊은 욕구와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난마저 거세니, 그 유명인의 처지가 난감하게 되었다. 더구나 검찰에서 이것을 ‘사기’ 사건으로 수사해서 사법적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칼을 빼 들고 나섰으니 이 사태는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석주는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른 해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여름,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일요일의 인문학’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최근 40년 시력을 모아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시인 박연준과 결혼 식 대신 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