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거리에선 영국의 명차 재규어-랜드로버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이 회사의 대표 SUV 브랜드 레인지 로버가 자주 눈에 띈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관련 통계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2007년 재규어-랜드로버의 국내 판매대수는 1096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 판매대수는 9975대에 달했다. 8년 만에 자그마치 9배나 신장했다. 지난해에도 판매 증가율은 50%에 달했다. 재규어-랜드로버의 국내 성장은 가위 폭발적이다. 그 이유는 물론 전반적인 국내 수입차 시장의 팽창에 기인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재규어-랜드로버의 자동차 성능 향상과 브랜드 명성 회복 등에 있다.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재규어-랜드로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는 글로벌시장에서 총 48만9923대를 팔아 영국 최대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했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 것이다. 지난 1999년부터 16년간 영국 내 자동차회사 중 부동의 정상은 닛산이었다. 그러나 닛산은 지난해 총 47만6589대를 팔아 2위로 내려앉았다.

영국 중부 솔리헐 소재 재규어-랜드로버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랜드로버 차량을 검사하고 있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영국 자동차회사 최정상 등극은 극적인 반전이다. 이 회사는 7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거의 부도상태까지 갔었다. 2009년 당시 재규어-랜드로버의 판매대수는 15만8000대에 불과했다. 6년 만에 세배 이상 판매대수가 급증한 것이다. 특히 재규어-랜드로버는 과거 판매대수가 30만대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재규어-랜드로버의 급부상은 괄목할 만하다.

그 핵심에 인도의 대표기업 타타자동차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규어-랜드로버는 잔 고장의 대명사였다. 빈번한 고장과 높은 유지비로 악명이 높았다. 1989년 미국 포드사가 재규어를 인수했으나 잔 고장 등은 여전했다. 성능도 어중간하다는 평을 받으며 퇴물 브랜드란 오명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타타가 2008년 재기불능의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해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당시 타타는 인수 대금으로 소유주인 포드에 23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지급했다. 이로써 영국이 자랑하던 명차 재규어-랜드로버는 피식민지 국가였던 인도에 넘어갔다. 1947년 인도가 영국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50년 만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2008년 23억달러에 인도 타타에 인수됐다.

그러나 타타자동차는 재규어-랜드로버 인수 직후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먼저 인수금액의 과다 여부였다. 23억달러의 인수금액은 포드가 이 회사 인수 및 운영과정에서 투입한 액수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포드는 지난 1989년 재규어를 25억달러에, 2000년에는 랜드로버를 27억달러에 인수했다. 또 두 브랜드의 매출 감소 속에 투입한 손실 보전액만 50억달러에 육박했다. 이 두 개 브랜드를 인수하고 유지하는 데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타타가 지불한 인수금액은 ‘헐값’ 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타타가 재규어-랜드로버 인수 후에 추가로 투입해야 할 비용까지 계산하면 ‘헐값’이 아니라 ‘바가지를 썼다’는 주장도 있다. 또 선진 기술만 빼먹고 튀는 이른바 ‘ 먹튀’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어 타타의 재규어-랜드로버 인수는 스포츠광인 라탄 타타 회장의 허영심의 발로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라탄 회장의 허영심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 이전에 타타가 인수한 영국의 코러스철강, 테틀리 차(茶), 뉴욕 피에르호텔, 한국의 대우상용차 등을 들었다. 이들 기업의 인수는 타타그룹 경영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비싼 인형을 사는 것과 똑같은 허영심에 불과한 행위라는 비난이었다.

심지어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쏟아졌다. 재규어 같은 고급 브랜드를 어떻게 길거리 청소도 잘 하지 않는 인도인들의 손에 넘기느냐는 것이었다.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규어-랜드로버가 후진국 인도 회사에 넘어간 사실을 매우 불쾌해 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곧 인도산 싸구려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인도, 독립 50년 만에 영국 名車 인수

재규어-랜드로버 인수는 타타자동차 주주들도 분노케 했다. 주주들은 “한물 간 부실 브랜드에 과도한 인수비용을 지불했다”며 경영진을 성토했다. 포드가 재규어-랜드로버 회생에 100억달러를 쏟아부었는데, 타타 역시 향후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타타의 라탄 회장은 이 같은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신 그는 이들 브랜드를 인수하자마자 회생에 적극 나섰다. 그는 인수 협상을 체결한 지 2주가 채 되기도 전에 전용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미국에선 전국 곳곳에 퍼져있던 재규어와 랜드로버 영업소 딜러들을 만났다. 딜러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이들이 회사 최고경영자를 만난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기때문이다. 라탄은 평소에도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접촉할 만큼 매우 소탈하고 겸손한 인물로알려져 있다.

그러나 라탄 회장의 회생 노력이 본격화하기 전에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2008년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특히 위기의 진앙인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의 타격이 제일 컸다. 그로 인해 프리미엄 승용차 재규어-랜드로버에 대한 수요는 급감했다. 2009년도 재규어-랜드로버의 판매량은 전년도에 비해 32%나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5억4700만달러의 적자가 났다. 위기였다. 대규모 감원 등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타타는 재규어-랜드로버 부문을 인수할 때 가능한 한 감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동차 판매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적자는 갈수록 불어났다. 시장에선 타타의 부도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다. 결국 타타는 어쩔 수 없이 6000명을 감원했다. 당초 1만6000명이던 직원은 1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잉글랜드에 소재한 공장 한 곳도 폐쇄했다. 인수 후부터 2009년 말까지 18개월 동안 이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재규어-랜드로버는 놀랄 만한 회복세를 보인다. 철저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의 결과였다. 2010년 이 회사는 총 24만3621대를 팔아 전년도에 비해 26%의 매출 증가세를 나타냈다. 경영수지도 7500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이런 강한 회복세는 2011년에도 이어졌다. 2011년에는 30만6000대를 팔아 연간 판매대수가 사상 최초로 30만대를 넘어섰다. 매출 성장률도 29%를 기록했다. 이런 고속성장세는 2012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차량 판매량이 급속히 늘면서 인력 고용도 빠르게 늘었다. 경기 악화로 인해 이 회사는 당초 1만6000명이던 인력을 1만명으로 줄였다. 그러나재규어-랜드로버의 직원수는 2014년 현재 2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원래 인원보다도 1만2000명이나 더 많이 고용한 것이다. 모든 면에서 이 회사의 경영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 인수 2년 후부터 경영 턴어라운드

도대체 타타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한 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수십년간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 기업의 소유였다. 서구 기업 경영체제하에서 이 회사는 만성 적자에 허덕인 천덕꾸러기였다. 그러나 인도 기업 타타가 인수한 후에는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를 새로 쓰고 있다. 도대체 타타는 어떤 식으로 이 회사를 경영한 것일까? 재규어-랜드로버의 극적인 회생 요인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타타그룹은 재규어-랜드로버 경영진과 노동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정책을 썼다. 타타는 프리미엄 승용차 경영 경험이 풍부한 현지 전문경영인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위임했다. 한마디로 가능한 한 간섭을 줄이는 정책(Hands-Off Policy)을 폈다. 또한 이 회사의 강성 노조들과도 타협하고 협력하는 상생정책을 구사했다. 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타타그룹의 전통이요 특성이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당초 우려됐던 인도인과 영국인 간 문화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재규어-랜드로버의 영국인 직원들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정신이 회사 내에 자리잡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 회사 수석 엔지니어인 케빈 스트라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원들이 과거에 비해 매우 열심히 일을 하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은 아주 열심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우리가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무슨 일이든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만약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타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면 직원들로부터 ‘최고’ 라는 답을 들을 것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게 참 좋습니다. 저 같은 개인들은 타타가 들어온 후 좋은 방향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이전 포드도 좋은 회사였지요. 그러나 우리는 회사에 대해 냉소적이었어요. 그런데 타타는 다릅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요. 우리는 지금처럼 집중적으로 일을 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타타는 사업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매우 건강합니다. 타타는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행정편의주의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문화는 변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시간이 걸리지요. 그런데 우리는 타타와 겨우 수년간 함께 했는데, 전보다 훨씬 민첩해졌습니다. 일과 관련, 부가가치를 늘리면 늘릴수록 그만큼 우리가 갖는 권한이 강화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열심히 일합니다. 타타는 개발도상국 기업이지만, 비즈니스와 관련해 우리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타타 특유의 신뢰와 상생정책이 글로벌 기업에도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신뢰 경영과 강력한 R&D 투자

두 번째 성공요인으로는 대규모 감원과 IT 아웃소싱 등 비용절감의 정책이 큰 힘이 됐다. 직원에 대한 해고를 싫어하는 타타도 극심한 경영 어려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인수 이후 18개월의 구조조정 기간 동안 6000명의 대규모 인력 감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타타는 감원이 필요할 때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쉬운 정리해고 대신 크리스마스 등 연휴 때 조별로 돌아가며 오래 쉬게 했다.

또 개별 근무시간 단축 혹은 몇개월간 무급휴가를 주는 방식 등으로 과잉 인력에 대처했다. 부득이하게 감원을 할 때는 파트타임 직원들을 먼저 내보냈다. 사측의 이런 노력 덕분에 강성으로 소문난 노조도 대규모 감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타타는 인수 직후 부터 품질 향상에 힘을 쏟았다.

셋째, 기술혁신과 신제품 출시 등 끊임없는 투자다. 타타는 재규어-랜드로버의 고급차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좀 더 부드러운 승용차나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SUV 모델을 연이어 출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 젊은층들을 타깃으로 내놓은 SUV 스타일의 승용차 레인지로버 에보크(Evoque)다. 물론 에보크의 개발을 시작한 것은 포드자동차였다. 그러나 타타는 에보크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마침내 결실을 거뒀다. 에보크는 럭셔리 SUV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2012년 파리모터쇼에서 발표한 F타입 스포츠카도 대박 행진에 가담했다. 이는 영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로 뽑은 E타입 로드스터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차다. 타타는 매년 24억달러의 돈을 신차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거액의 투자 덕택에 향후 5년 내에 40여개의 신차 모델이 발표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이 재규어-랜드로버 회복의 견인차가 됐다. 중국은 고급차에 대한 수요가 서구시장 못지않은 나라이다.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고급차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중국 신흥부자들 가운데 흔한 벤츠나 BMW 대신에 재규어나 랜드로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품위를 갖췄으면서도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05년 재규어-랜드로버 전 세계 판매량의 단지 1%에 불과했던 중국 비중이 2013년에는 20%로 급증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인도 타타의 경영철학하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이런 영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재규어-랜드로버를 통해 인도의 상생 경영철학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통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필자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은…
한국외국어대 서반어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인도 네루대학교 국제학부 객원교수, 배재대 교수,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