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약인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를 개발한 유동원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구하는 방식과 문화만 조금 바꾸면 한국도 충분히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초대형(블록버스터급) 신약(新藥)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과학계를 보는 다른 나라의 시선도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요. 10년 안에는 분명히 꿈이 이뤄질 것으로 자신합니다."

유동원(41)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위원(연세대 교수)은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과학자이다. 서울대 공업화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를 모두 마친 토종 박사 출신으로,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 박사 후(後) 연구원 시절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Xtandi)' 개발을 주도했다. 신약을 개발해보고 싶다며 2005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모험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엑스탄디 개발에는 유 교수의 지도교수인 마이클 정 교수를 비롯, 미국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찰스 소이어 교수 등 세계적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유 교수는 "신물질 개발에 대한 구상을 지도교수에게 설명하자, 나를 믿고 흔쾌히 팀에 합류시켜줬다"고 말했다.

2012년 출시된 엑스탄디는 말기 전립선암 환자들의 유일한 치료제로 지난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2조2000억원어치가 팔렸다. 글로벌 제약사 '로열파머'와 '사노피'는 올 3월 UCLA에 엑스탄디에 대한 특허료로 11억4000만달러(약 1조3500억원)를 지급했다. 그중 유 교수가 받는 돈만 600억원이 넘는다.

이후 유 교수에게 UCLA 등 미국 유명 대학과 제약 회사에서 영입 제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귀국을 선택하고, 올 2월에 기초과학연구원(IBS)에 합류했다. 미국에서 가능한 일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한국 대학과 연구소의 인력과 장비도 미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면서 "연구하는 방식과 문화를 조금 바꾸면 충분히 신약 개발과 같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강점인 '팀(team) 연구'와 '수평적 문화'를 한국에 심고 싶다"고 했다. 유 교수는 "미국에서 엑스탄디 개발에 참여한 8명은 전공이 모두 달랐지만 항상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서 "서로의 분야에 대한 이해와 팀원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의사 결정도 빠르고 성과도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 덕분에 신약 개발 경험이 없는 유 교수도 금방 팀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했다. 엑스탄디 공동 개발자인 찰스 소이어 교수는 '기적의 명약'으로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개발한 세계 최고의 의학자이다. 연구비도 소이어 교수가 상당부분을 조달했다. 하지만 박사 후 연구원에 불과했던 유 교수와 소이어 교수는 동등한 특허권료를 받는다. 지도교수나 팀장이 대부분의 성과를 가져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이다. 유 교수는 "미국 연구자들은 연구가 잘되면 나도 혜택을 받는다는 믿음이 확고하다"면서 "'남의 연구'가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에게는 가장 큰 동기 부여"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나노의학 연구단에서 신약 개발을 하고 있다. 나노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1미터) 수준의 물질을 만들어 치료에 사용한다.

유 교수는 "기존 항암제는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잘 구분하지 못해 모든 세포를 죽인다"면서 "특정한 크기의 나노 물질을 만들면 암세포의 혈관에만 다가가도록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나노 물질에 항암제를 넣으면 암세포만 골라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성(磁性)을 가진 나노 입자를 암세포에 주입한 뒤, 외부에서 전파를 쏘아 열을 발생시켜 암세포를 태워 죽이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유 교수는 "나노의학은 전 세계적으로 시작 단계인 만큼, 한국이 가장 앞서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이미 신약 하나를 만드는 행운을 얻었으니, 한국에서 꼭 하나만 더 만들어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