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유전적 요인과 식습관 등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미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과학자들은 소화기관인 장 내에 어떤 미생물이 있느냐가 비만과 마른 체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미생물 연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른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분리해 비만한 사람에게 주입해 비만을 치료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생물을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도 발전하고 있다. 2013년 네덜란드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장염이 있는 환자에게 주입해 치료에 성공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체 내의 미생물의 유전체 해독에 따라 미생물의 역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3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기 정부의 마지막 과학 연구 프로젝트로 ‘미생물’ 연구를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이니셔티브’로 불리는 이 연구 프로젝트에는 향후 2년간 1억 2100만 달러(약 1400억원)가 투입된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 지도를 그리고 그 역할을 규명하는 게 목표다.

오바마 정부는 인간 뇌지도 작성(브레인 이니셔티브)과 암 치료(암 정복 이니셔티브) 등 굵직한 과학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오바마 2기 정부가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마이크로바이옴’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인체 내 미생물의 역할을 규명하면 획기적인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의약품이 상용화하기 시작하면 신규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 미생물은 당신이 왜 장염에 걸리는지 알고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체에 사는 미생물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사람의 세포 수는 약 30조 개인데 인체 내의 미생물 개수는 약 39조 개에 달한다. 사람 몸 속에 사는 미생물의 무게는 약 2kg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의 유전자 개수도 사람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사람의 유전자 개수는 약 2만 2000개로 알려졌는데, 인체 내의 모든 미생물 유전자 개수를 합하면 사람의 유전자보다 약 150배 많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미생물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미생물 연구의 대가인 제프리 고든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2006년 네이처에 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높아졌다.

고든 교수는 체내에 미생물이 살지 않는 ‘무균 쥐’에 뚱뚱한 쥐의 대변과 마른 쥐의 대변을 각각 주입하고 똑같은 먹이를 주면서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뚱뚱한 쥐의 대변을 주입한 쥐의 체중이 마른 쥐의 대변을 주입한 쥐의 두배로 늘어났다.

당시 미생물 학자들 사이에서 이 연구의 파장은 컸다. 대변은 소화 작용의 결과로만 인식됐는데, 특정 증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변에는 인체 내의 미생물 중 99%인 장내 미생물이 함께 섞여 있다. 이 장내 미생물이 체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 때부터 촉발됐다.

2013년 네덜란드 연구진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이라는 의학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장내 미생물에 대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장염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주입하자 장염이 치료됐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염증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썼을 경우보다 더 많은 환자에 장염 치료 효과가 있었다.

김병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면역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장내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최근 몇 년 동안 활발해지고 있다”며 “미생물의 역할과 효과가 빠른 속도로 규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 장내 미생물 이용한 치료약 개발 경쟁 불붙어

2012년 네이처에 당뇨 치료제인 ‘메트포민’을 복용한 환자의 장내에는 ‘아커만시아’라는 미생물이 많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아커만시아라는 미생물을 쥐에게 주입해 혈당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김병찬 연구원은 “비만, 당뇨,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는 장내 미생물만을 모아서 치료약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조만간 열릴 것”이라며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오픈바이옴(OpenBiome)’, ‘세레스헬스(Seres Health)’ 등 10여개가 넘는 바이오 벤처들이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 치료에 활용되는 대변 미생물 이식용 캡슐. 정상인의 장내 미생물을 대변을 통해 환자에 주입해 이 감염증을 치료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내 미생물과 각종 질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윤상선 연세대 교수(사진) 연구팀은 장내 세균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감소시키는 원인 미생물과 유전자를 찾아내고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5월 13일자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항생제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알려진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은 장내 미생물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항생제 복용 후 장내에서 증가해 독소를 만들어 설사 등을 유발하는 장 질환으로 연 평균 미국에서만 2만9000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윤 교수 연구팀은 항생제를 복용한 쥐가 대표적인 병원성 세균 중 하나인 콜레라균 감염에 매우 취약한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콜레라균과 상호 작용하는 장내 미생물을 분리하고 유전체 분석을 통해 이 미생물에 콜레라균 감염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윤상선 교수는 “항생제에 반응하는 장내 미생물 분석을 통해 특정 유전자가 감염성 세균의 증식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라며 “감염성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메모리얼슬론케터링(Memorial Sloan Kettering) 암센터’의 에릭 파머 박사는 지난 4월 말 발간된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낸 기고문을 통해 “항생제가 장내 미생물 균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며 “항생제와 장내 미생물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