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인데, 꿰어서 보배를 만들기는커녕 방치돼 썩고 있는 지경입니다."

우리나라 IT(정보기술) 업계의 법·제도 전문가들이 한국의 빅데이터(big data·대용량 정보) 활용 환경을 놓고 한 말이다. 초고속인터넷 등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활용 가치를 가진 디지털 정보가 축적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진 법·제도가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이 IT 분야에서 충분한 잠재 성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정부 3.0 정책 토론회’에서 송희준(왼쪽) 정부 3.0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3.0 추진위원회가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빅데이터 활용의 법적 쟁점'을 주제로 연 정책 토론회에서 최정환 한국정보화진흥원 빅데이터 센터장, 구태언 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등은 "전 세계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기반해 산업과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알파고(AlphaGo·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혁명'을 겪고 있다"면서 "한국 역시 빅데이터 산업의 육성을 통해 빨리 이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에 막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 정보의 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정한 데다 무조건적인 사전 고지(告知)와 동의(同意)의 의무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익명 고객들의 위치 정보나 거래 정보 등을 빅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조차도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유럽·일본 등 선진국처럼 개인을 특정화할 수 있는 정보만 개인 정보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헌영 교수는 "정부 부처들이 복지·교육·예산·세금 등 다양한 분야의 빅데이터를 각각 별도로 구축해놓고 부처 간 공유를 하지 않는 것도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정부 데이터의 통합적 활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희준 정부3.0 위원장은 "세계 최고의 IT 환경과 전자 정부 인프라를 갖춘 한국에서 낡은 법·제도가 행정과 산업의 '빅데이터 혁명'을 막고 있다는 것은 기가 찬 일"이라며 "한국의 빅데이터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