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매장에서 일하는 A(28)씨는 최근 피부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A씨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는지를 물은 뒤, 한 번에 약 5만원인 일명 '걸그룹주사(특정 부위 지방분해주사)'를 맞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는 실손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이다. 비용 문제로 A씨가 망설이자 병원에서는 "도수치료(맨손으로 하는 통증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와 병원은 이렇게 서로 짜고 치료 항목을 바꾸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받아 내다가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정부가 보험 사기와 과잉 진료로 멍들고 있는 실손보험제도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실손보험은 현재 약 3200만명의 국민이 가입하는 등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지만,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보험금을 타내는 등 도덕적 해이가 빈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급증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정부는 더는 이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범정부 협의체를 만들어 실손보험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나섰다.

◇실손보험 구조적 문제 전부 도려낸다

실손보험이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나머지 의료비를 포괄적으로 보장해주는 민간보험상품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작년 장기보험(보험계약기간 1년 이상)의 전체 보험료 중에서 실손보험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31.5%로 이 수치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실손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6개 관계 기관들은 18일 서울 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 모여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실손보험 제도 개선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올해 말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까지 나서서 실손보험제도를 손보게 된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손해율이 지나치게 높아져 보험료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2011년 2662만3000명→2015년 상반기 3150만6000명). 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 중 보험사가 보험금으로 얼마나 지급했는지를 나타내는 손해율은 109.9%(2011년)에서 124.2%(2015년 상반기)로 훌쩍 뛰었다. 즉 보험사들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도 더 많은 돈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문제는 손해율 상승의 원인이 과잉 진료와 보험 사기에 있고, 이로 인한 보험료 상승은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금으로 지급되는 항목 중 약 68%가 비급여항목에 대한 것이다. 비급여항목은 건강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하는데, 치료에 대해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에 병원마다 가격 편차가 크다. '부르는 게 값'인 셈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부 병원에서 비급여 항목에 대해 과잉 진료를 한 뒤 환자에게 실손보험을 적용받도록 하거나 보험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손해율이 점차 높아지자 대부분의 보험사는 올해 실손보험료를 약 20% 높였다. 실손보험 가입자 중 보험금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은 전체의 20%가량에 불과하다. 결국 소수의 가입자가 높여놓은 실손보험료를 나머지 80%의 가입자가 책임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진료비 코드 표준화 추진한다

이날 협의체를 이끈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실손의료보험 관련 통계시스템을 구축해 비정상적인 운영방식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에서 과잉 진료 등이 벌어지는 이유는 각각의 병원이 같은 치료를 하면서 얼마를 받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같은 도수치료라고 해도 B병원과 C병원이 병원 시스템에 입력하는 코드가 다르다. 이렇다보니 환자는 물론 관계기관에서도 병원들이 적정한 가격을 매기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진료비 코드 표준화와 실손 통계 시스템 정교화 같은 과제를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스템이 마련되면 비급여항목에 대한 가격과 횟수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이뤄질 전망이다. 통계적으로 표준화된 가격과 치료 횟수를 산출해 병원의 과잉진료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정성희 연구위원은 "방대한 양의 통계를 정교하게 분석한 다음 표준화된 수치를 공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