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 모바일 결제, 스마트워치에 이어 이젠 가상현실(VR)까지'.

애플에 맞선 'IT(정보기술) 연합군'으로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구글삼성전자가 경쟁 관계로 돌아서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7년여간 애플의 '아이폰'을 뛰어넘기 위해 소프트웨어 기반기술(구글)과 하드웨어(삼성)에서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며 협력해왔다. 하지만 최근 애플이 쇠퇴 조짐을 보이는 데다 미래 먹거리가 달려 있는 차세대 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오랜 밀월(蜜月) 관계가 끝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경영학)는 "시장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굳건한 협력 관계를 맺었던 기업들이 시장의 성숙 단계에서는 대결 관계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면서 "앞으로 삼성전자와 구글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VR 분야에서도 맞붙은 삼성·구글

구글은 18일(현지 시각) 열리는 2016년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콘텐츠용 헤드셋 기기, 일명 '안드로이드 VR'을 선보인다. 구글 관계자는 17일 "이번에 발표할 제품은 '맛보기 수준'이 아니라, 게임과 영상 등 다양한 VR 콘텐츠를 직접 즐길 수 있는 본격적인 VR기기"라고 했다. VR 하드웨어 시장에도 직접 뛰어들겠다는 선언이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피터 로하스 전 엔가젯 편집장 등 구글과 가까운 인사들이 "안드로이드 VR이 삼성 VR보다 낫다"는 등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구글의 경쟁사인 페이스북과 손잡고 VR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폰·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등장시켜 삼성의 VR헤드셋 '기어 VR'과 VR 카메라 '기어360'을 선보이기도 했다.

구글과 삼성전자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형국이다. 지난 2014년 구글이 IoT기술 업체 '네스트(NEST)'를 인수하자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했고,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IoT 기반 기술 '아틱'을 내놓자 구글도 IoT 기반 기술 '브릴로'와 '위브'를 내놨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가 '구글 월렛' 대신 독자적 모바일 결제 시스템 '삼성페이'를 선보이려 하자 구글은 곧바로 '안드로이드 페이'를 선보여 김을 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대신 자체 운영체제(OS) '타이젠'을 이용한 스마트폰(삼성Z1·Z3)과 스마트워치 '기어S2'를 내놓자 구글은 이 회사의 구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의 대표 제품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 '기어' 대신 LG전자의 'G워치'와 'LG 워치 어베인'을 부각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무인차 관련 기술 개발에서도 삼성전자와 구글이 별개로 사업을 추진하며 전선(戰線)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 쇠퇴 이후 차세대 성장 동력 놓고 갈등

그동안 삼성전자와 구글은 이와 잇몸의 관계였다. 구글이 새로운 스마트폰 운영체제(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면 삼성전자는 이를 구현하는 신제품을 출시해 함께 시장을 석권해왔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에 불과했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시장 점유율은 구글과 삼성의 협력 관계가 본격화된 2010년부터 급등, 지난해 4분기 80.7%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단계에 돌입한데다 '공동의 적(敵)'인 애플마저 쇠퇴의 조짐을 보이자, 삼성전자와 구글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IoT와 모바일 결제, 스마트 워치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모호한 융·복합 분야가 차세대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삼성전자와 구글의 경쟁이 불가피한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심지어 지난달 18일 구글의 안방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삼성 개발자 회의'를 열기도 했다. 삼성전자 측은 당시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구글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낮아졌다는 것을 적지(敵地)에서 당당히 밝힌 셈이다.

반면 구글은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겨냥해 조만간 판매가가 50달러(5만5000원)에 불과한 조립식 스마트폰인 '아라'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 제조사와 공동 개발하는 '넥서스' 스마트폰도 삼성 대신 LG전자, 중국 화웨이와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