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중국 휴대폰 제조사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1억대를 돌파한 화웨이를 필두로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오포, 비보 등의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리오넬 메시, 스칼렛 요한슨, 송중기 등 국내외 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브랜드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도 중국 제품이 등장한다.

중국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의 3강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중국 휴대폰 기업들의 한국 시장 성과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기존 업체들과의 관계를 의식해 중국의 인기 제품을 들여오는 걸 망설이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화웨이 전시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유럽 접수한 화웨이, 미국 시장까지 넘봐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중국의 선전을 주도하는 기업은 화웨이다. 홍콩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해 1분기(1~3월) 2840만대의 스마트폰 출하량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3% 증가한 수치다. 화웨이의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총합은 2014년보다 44% 늘어난 1억800만대다. 중국 휴대폰 제조사 가운데 연간 출하량 1억대를 돌파한 기업은 화웨이가 처음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200억달러(약 23조5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2014년보다 70% 늘어난 수준이다. 리처드 유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21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을 2015년 대비 30% 이상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 제품은 특히 유럽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P8, 메이트S 등 이 회사의 플래그십(제조사의 핵심 역량을 담은 주력 기종) 모델들은 지난해 서유럽 고가폰(400~500유로) 시장에서 60%대의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북유럽 지역에서의 스마트폰 출하량도 전년 대비 114% 증가한 346만대를 기록했다.

유럽 시장에서의 인기는 광고 모델 기용에도 영향을 끼쳤다. 화웨이는 올해 3월 스페인 명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간판 공격수이자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를 글로벌 홍보대사로 선정했다. 케빈 호 화웨이 컨슈머 비즈니스그룹 대표는 “메시는 화웨이가 집중하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의 지역에 자사의 가치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과 ‘맨 오브 스틸’의 주연을 맡은 헨리 카빌이 화웨이 광고 모델로 합류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서서히 미국 시장도 넘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리처드 유 CEO는 “미국 통신사들과 제휴 방안에 대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의 글로벌 홍보대사로 선정된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왼쪽에서 두 번째)가 화웨이 관계자들과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 화웨이 잇는 신흥 강자 오포·비보…송중기도 영입

또 다른 중국 스마트폰 업체 오포와 비보는 중국 뿌뿌까오(BKK) 일렉트로닉스가 만든 형제 브랜드다. 둘 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기업들이지만, 외국 시장에서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 샤오미, ZTE 등을 잇는 신흥 강자로 이 두 회사를 꼽는다.

오포는 올해 1분기에 스마트폰 출하량 1330만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7860만대와 5120만대를 각각 출하한 삼성전자와 애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성장률을 보면 놀랍다. 오포의 2015년 1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690만대 수준이다. 1년 만에 92.8%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애플의 출하량은 각각 5.6%, 16.3%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오포가 올해 1분기에 총 185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해 시장점유율 5.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점유율이다.

비보는 형제 오포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조금 낮긴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자사 이름을 알리는 마케팅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비보는 최근 프리미엄 스마트폰 ‘엑스플레이5’를 출시하면서 한류 스타 송중기를 광고 모델로 선정했다. 송중기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캡틴아메리카: 시빌워’의 주인공들이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에서도 VIVO(비보)라는 브랜드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IDC에 따르면 비보는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총 143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무려 123%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4.3%로 오포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16 현장에 중국 오포의 스마트폰들이 전시된 모습

◆ 삼성 눈치보는 韓 통신사들 “중국 인기폰 들여오면 보복 당해”

중국 휴대폰 제조사들이 아직 한국 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진 않다. 화웨이가 구글과 공동 개발한 ‘넥서스6P’, 초저가폰 ‘Y6’ 등이 지난해 12월 국내 출시된 정도다. 두 제품 모두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의 휴대폰 제조 기술력이 삼성전자, 애플 등 주요 기업의 턱 밑까지 쫓아갔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의 ‘싸구려’ ‘짝퉁’ 이미지만 해결한다면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중국산 스마트폰의 생산 속도와 질이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 예로 화웨이는 이달 11일(현지시각)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소비자가전쇼(CES) 아시아 2016’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 신제품 ‘P9’을 공개했다. 화웨이는 독일의 유명 카메라 제조사 라이카와 함께 개발한 듀얼 카메라를 P9에 탑재했다. 외신들은 앞다퉈 “역대 최강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중국 제조사들의 스마트폰을 국내 시장에서 만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이동통신사를 통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방식의 약정폰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소비자가 직접 단말기를 구입한 다음 통신사를 선택하는 외국의 자급제폰 시장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국내 인지도가 낮은 중국 제조사들은 자급제 방식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할 경우 보기 좋게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유통망을 활용하길 원한다. 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 주요 파트너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동통신사들은 선뜻 중국 기업 제품을 들여오지 않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2015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의 국내 시장점유율 총합은 90.9%다. 이중 삼성전자가 56.5%로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중국 제조사들의 인기 제품을 국내 시장에 들여오면 분명 화제가 되긴 할 것”이라며 “그러나 그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기존 제조사들과의 관계 악화를 감내할 통신사가 쉽게 나타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