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를 끝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기자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국책은행 자본 확충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자본확충펀드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금통위는 현행 연 1.5%인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13일 "현재 국책은행 자본 확충을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며 "자본 확충 펀드도 한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자본 확충 펀드가 방안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지만 그 안이 채택되더라도 조성 규모, 펀드 운용 구조, 회수 방법 등에 대한 복잡한 문제가 있다"며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또 "중앙은행이 대출을 하건 채권을 매입하건 자산 운용에서 손실을 내서는 안 된다는 건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이자 책무"라며 "자본 확충 펀드 외에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본 확충 펀드 방식이 출자에 비해 국책은행 부실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선 "보통주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선 직접 출자가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며 "그러나 보통주 자기자본비율 제고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협의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데 한국은행이 직접 출자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반면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국책은행 출자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일종의 펀드를 만들어 담보 대출과 비슷한 형태로 돈을 빌려주는 방안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 바 있다.

조선·해운사의 부실을 해결하려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자본을 최대 10조원 확충해야 할 상황이다. 금융시장에선 만약 한국은행이 원하는 대로 자본 확충 펀드가 국책은행 지원책으로 채택되면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은행 자본 확충 펀드'와 비슷한 방식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총재는 당시 한국은행 부총재보·부총재로 일하며 직접 펀드 조성을 지휘했던 경험이 있다.

2009년 3월 한국은행이 주도한 '은행 자본 확충 펀드'는 시장 상황을 보아가며 최대 20조원까지 만들 수 있게 설계됐다. 금융 위기 이후 부실 대출이 속출해 일부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이 BIS(국제결제은행)의 '부실 은행' 기준선인 8% 가까이 떨어지자,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어려운 기업에 대한 대출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대출해주면 산업은행이 이 돈으로 은행의 자본을 확충할 펀드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실제 한국은행이 대출한 금액은 3조3000억원이었다. 한국은행은 2014년까지 모든 대출을 회수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만약 한국은행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방안으로 자본 확충 펀드 방식이 채택된다면 2009년 만들었던 자본 확충 펀드의 틀을 기초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산업은행이 펀드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대출해줄 수는 없으므로, 과거 산업은행이 맡았던 역할을 기업은행이 담당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1.5%로 내린 후 11개월째 동결이다. 금리를 동결한 이유에 대해 이 총재는 "소비 등 내수와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완만한 개선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며 "현재 금리 수준이 실물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국책은행 자본 확충과 금리 정책은 별개 사안"이라면서도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급되는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은 금리를 결정할 때 분명히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