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굴비·인삼 등은 선물용으로 주로 소비된다. 소매 가격이 비싼 편이라 불경기에 덜 팔리기 마련이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이 품목들의 매출이 줄어들어 농어민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 생계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농어민들은 주장한다. 한 농민 단체 간부는 "김영란법이 부패를 없애자는 좋은 취지라고는 해도 사회적 약자인 농어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농어민뿐 아니라 유통, 포장, 운송 각 단계에 종사하는 서민들도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훼·난·인삼 농가 존폐 기로

경기도 이천에서 한우를 키우는 농민 공준식(49)씨는 "한우로 5만원짜리 선물 세트를 만들라고 하면 국거리나 불고기거리 외에는 아예 선물 세트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고 등급보다 하나 낮은 1+등급으로 구이용 한우를 세 덩어리(1.8~2.4㎏) 담아 선물 세트를 만들어도 금액이 17만원대에 달한다.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팔린 한우 선물 세트 중 10만원 미만은 7%에 불과하다. 93%가 10만원 이상 선물 세트다. 그래서 농민이나 축산 단체들은 "김영란법이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성형주 기자

전남 완도에서 18년째 전복 양식을 하는 양관석(62)씨는 "4인 가족이 한 끼에 먹으려면 못해도 전복이 15~20개는 들어가야 하는데 5만원짜리로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전복 상품(上品)은 1㎏에 7만원 정도인데 선물용으로는 2㎏짜리(약 14만원)를 많이 찾는다. 양씨는 전체 양식 물량의 20~30%를 선물용으로 배송 판매하는데, 그만큼 판매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굴비사업단 관계자는 "15만~20만원은 돼야 굴비 크기가 선물 느낌이 나는데, 굴비를 딱 두 마리만 선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5만원에 맞춘 초소형 굴비로 선물 세트를 만들면 누가 선물용으로 사가겠느냐"고 말했다.

화훼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꽃집 사장은 "경조사용 화환 판매 없이 운영 가능한 꽃집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경조금 상한선을 10만원 이하로 묶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꽃집 30~40%는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훼협회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꽃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는 격"이라며 "화훼 산업이 35~40% 정도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만원대 난·화환… 法 통과땐 보내기 어려워져 - 화훼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을까봐 전전긍긍이다. 경조사 때 선물용으로 난, 화환을 많이 보내는데 대개 가격이 10만원대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화환을 포함한 경조금 상한선이 10만원이라서 경조금을 내면 따로 난, 화환을 선물하기 어려워진다.

고부가가치 농업 흔들린다

정부는 그동안 값싼 외국산에 대응해 고부가가치 농·축산물을 생산하도록 고급화 정책을 펼쳐왔다. 정부는 올해 사과·배 등 고품질 과일 사업에만 531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한우·낙농 분야에도 123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이런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상반된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수십 년간 고품질, 고급화를 강조하더니 김영란법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황명철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 센터장은 "정부를 믿고 기술력에서 앞서간 농민들이 더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음식점들도 초비상

음식점들은 김영란법 시행 후 손님이 줄고 수익성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종업원 감축 등 비용 절감에 나설 태세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대형 식당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매출이 떨어질 것이 예상돼 되는 만큼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며 "코스 위주의 메뉴를 단품으로 바꾸고, 직원 30명 중 일부를 줄이는 것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세종시의 한우 전문 식당은 "매출의 20~30% 정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종업원 6명 중 한두 명은 내보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선물을 하지 말라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선물용 물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내수를 급격히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김영란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