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의 더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기술했다. 전기세탁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여성이 매일 수북이 쌓이는 빨래의 부담에서 해방돼 사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기세탁기 발명 이후 평균 빨래 시간은 4시간40분에서 6분의 1 수준인 40분으로 줄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와 개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세탁기는 누가 어떻게 개발했을까?

미국 월풀에서 개발한 최초의 자동 세탁기의 모습

현대식 세탁기의 시초는 제임스 킹(James king)이 1851년 미국에서 발명한 실린더식 세탁기다. 전동 모터를 주동력으로 사용하는 이 세탁기는 물과 세제의 작용과 물리적 힘으로 세탁하고 헹구고 탈수한다. 1911년 미국의 가전업체 메이택(Maytag)이 판매 가능한 전기세탁기를 처음으로 고안한 데 이어 월풀(Whirlpool)이 같은 해 자동세탁기를 내놓으면서 바야흐로 전기세탁기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금성이 전기세탁기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 뉴턴의 사과나무에서 출발한 세탁기…전자기유도·원심력·중력

세탁기는 더러워진 옷감 등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기계로 많은 과학적 원리를 담고있다.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발견한 ‘전자기유도 법칙’과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운동 제1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 등이 있다. 세탁기는 전자기 유도 법칙을 활용한 발명품 전기 모터의 회전으로 발생하는 원심력과 낙차를 이용한다. 원심력과 낙차는 뉴턴의 운동 제1법칙(관성)과 만유인력 법칙 등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마이클 패러데이(왼쪽)와 아이작 뉴턴(오른쪽)의 모습

패러데이는 1831년 전기 모터의 원리인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했다. 이 법칙은 코일에 자석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면 전지 없이도 자석의 운동만으로 자기장이 형성되고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코일에 전류가 흐르게 되면 마치 자석처럼 N극과 S극이 생긴다. 코일의 N극과 자석의 N극을 가까이하면 서로 밀어내는 척력(斥力)이 발생한다. 반대로 코일의 N극과 자석의 S급을 가까이하면 서로 잡아당기는 인력(引力)이 생긴다. 전기 모터는 이러한 인력과 척력을 응용해 만들어졌다.

모터가 한쪽으로 회전하는 원리는 인력과 척력의 반복에 바탕을 둔다. 구리로 감싼 모터축과 모터 케이스 내벽에 붙은 자석이 빠른 속도로 상호 작용하면서 이러한 힘이 발생한다. 모터에 공급하는 전기는 자석을 모터축과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는 데 쓰인다.

세탁기는 전기 모터의 힘으로 세탁조가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에 의해 세탁조 내벽으로 쏠린 옷감이 물과 세제 등과 마찰하면서 불순물을 떨어뜨리는 원리로 작동한다. 원심력은 원운동을 하는 회전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작용 힘을 말한다. 차를 타고 좌회전을 할 때 운전자의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는 것은 원심력 때문이다.

세탁기에 사용되는 전기 모터의 모습

세탁조 내부에 울퉁불퉁한 무늬가 많은 것은 물과 빨래 간의 마찰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물살이 360도 회전하는 원운동을 하면서 옷감은 세탁조 내벽에 부딪히게 된다. 손빨래할 때 몽둥이로 빨래를 내려치거나 손으로 비비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빨래를 마친 뒤 옷감에서 물을 빼는 탈수 과정에서도 원심력이 이용된다. 세탁조를 빠르게 회전하면 빨래는 원심력에 의해 세탁조 내벽에 달라붙게 된다. 이후 빨래에 묻은 물을 세탁조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바깥쪽으로 배출된다. 탈 수를 끝내고 나서 세탁조를 들여다보면 빨랫감이 원을 두르며 내벽에 붙어 있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와류식 세탁기 VS 드럼 세탁기 무엇을 살까?

세탁기는 크게 교반식, 와류식, 드럼형 3종류가 있다. 세탁조 내부에 큰 봉이 달려 이른바 ‘봉세탁기’로 불린 교반식 세탁기는 2000년대 초까지 북미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교반식 세탁기는 봉의 회전으로 물살을 일으켜 빨래한다. 교반식은 좌우로 짧게 봉의 회전 방향을 바꿔가며 물살을 만들기 때문에 빨래가 물 안에서 얽히는 일이 적고 옷감의 손상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교반식 세탁기의 세탁조 내부 중앙에는 물살을 일으키는 봉이 있다.

반면 봉의 지속적인 회전을 위해 고출력 모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소음이 크고 전력 소요량이 많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또 상대적으로 고장이 잦고 수리 비용이 비싸며 봉 때문에 부피가 큰 빨래를 하기 어렵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것은 와류식 세탁기다. 빨래를 위에서 넣고 세탁조 바닥에 있는 세탁판이 360도 회전하면서 물살을 일으켜 빨래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교반식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처음 도입됐다.

와류식 세탁기의 물살 움직임 모습. 세탁기 아래 세탁판이 360도 회전하며 물살을 일으킨다.

와류식은 세탁통 전체에서 물살을 일으켜 빨래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물이 많이 사용된다. 물살을 유지하기 위해 고출력의 모터도 필요하다. 물살이 강해 옷감이 엉키는 경우가 많아 옷감 손상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세척력은 우수하다.

와류식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드럼 세탁기다. 드럼 세탁기의 경우 입구가 앞에 있어 키 작은 사람도 사용하기 편리하다. 또 물과 세제의 사용량이 와류식 세탁기에 비해 적고 빨래가 잘 엉키지 않는다. 다만 빨래 시간이 길고 전력 사용이 많다는 것은 단점이다.

드럼 세탁기의 세탁과정. 세탁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

와류식은 드럼 안에서 빨래를 뒹굴뒹굴 돌리면서 낙차(중력)와 물 마찰로 때를 뺀다. 드럼 세탁기의 세척력은 원심력을 이용하는 와류식보다 떨어질 수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흔히들 와류식은 구형, 드럼 세탁기는 신형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구동 방식과 수요 시장의 차이일 뿐 두 제품 모두 다양한 신기술을 끊임없이 채용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드럼형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와류식의 비중이 아직 더 크고, 최근에는 와류식과 드럼 세탁기의 장점을 합친 하이브리드 제품들도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