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고전했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새로운 수요처 발굴과 사업 다각화를 통한 '홀로서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국의 대표 수출품인 디스플레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조(兆) 단위 수익을 냈다가 올해 1분기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실적이 급락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분기 2700억원의 적자(赤字)를 냈고 LG디스플레이도 395억원의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위기감을 느낀 삼성·LG디스플레이는 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외부 공급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최대 경쟁자인 애플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OLED를 공급하고, LG디스플레이는 전기차와 같은 이종(異種) 업체를 새로운 공급선으로 뚫고 있다.

애플과 손잡는 삼성, 테슬라와 협력하는 LG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미국 애플에 아이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이 삼성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OLED를 애플에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스마트폰의 경쟁력 하락을 일부 감수할 정도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신규 공급처 확대가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애플은 올 9월에 첫 OLED 패널을 탑재한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애플 아이폰의 연간 판매량이 약 2억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이폰7 물량의 50%만 가져와도 1억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등 부품 사업을 총괄하는 권오현 부회장이 지난달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맡은 것도 신규 공급선 확보를 위한 전략이란 해석이 나온다. 권 부회장은 애플·소니·화웨이 등 글로벌 IT 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해왔으며, 이런 반도체 네트워크를 삼성디스플레이에 접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삼성디스플레이의 체질을 권 부회장이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자동차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최대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와 15인치 크기의 차량용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의 자동차 내부엔 인터넷 접속, 내비게이션(길 안내), 음악 재생 등의 기능을 하는 화면이 있다. 스마트폰·TV에 이어 자동차라는 새 고객군을 찾은 것이다. LG디스플레이의 관계자는 "제2, 제3의 새 고객을 만들기 위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폭넓게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애플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LG디스플레이는 현재 경북 구미 공장에 1조3600억원을 투입해 스마트폰용 OLED 생산 라인을 늘리고 있다. 업계에선 애플에 공급 물량을 확대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했다.

다각화 못 하면 생존 위기

두 회사가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이유는 "지금 방식대로는 회사의 존립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계열사 납품에 의존하는 방식이 한계에 달했음을 절감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현재 매출의 60% 가까이가 삼성전자에서 나와 삼성전자가 어려워지면 부품 계열사 삼성디스플레이는 2~3배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주춤하며 영업이익이 줄자,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예 적자의 늪에 빠졌다. 서울대 이창희 교수(전기공학)는 "세계 1·2위의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기존에 하지 않았던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경쟁 업체 납품 등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