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라면으로 시작한 불맛 열풍… 불고기·만두까지 이어져"
"알고 보면 불맛은 불가능한 맛! 맛이 아닌 향기로 느낄뿐"

중국 요리의 전유물이었던 강한 불맛이 시판 제품에도 적용되고 있다.

짜장에서 시작한 불길이 짬뽕으로 번졌다. 새로운 불맛의 시대다. 4년 전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을 내놓았을 때까지만 해도, 불은 화끈한 매운맛의 상징이었다. 1986년의 신라면부터 2012년의 불닭볶음면까지 라면의 주류는 매운맛이었고, 스코빌 척도(고추류의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얼마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불맛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팔도 불짬뽕

지금은 다르다. 이제 불맛은 고온조리의 맛이다. 강한 화력의 불로 재료를 볶으면 음식물 표면의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며 식재료 본래의 풍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당분은 캐러멜로 변하기도 하고, 아미노산과 만나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 다양한 분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음식에 불맛을 입힌다.

◆ 중식에서 시작된 불맛, 일반 가정에서 재현하기 어려워

배달을 통하지 않고 짜장과 짬뽕의 맛을 집에서 재현하기란 이제껏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불맛은 식당의 맛이다. 갈변 반응은 기본적으로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한다. 중국 식당의 화구가 뿜어내는 열기는 가정집 가스레인지의 25배에 달하여 반구형 웍 아랫부분의 온도를 700-800℃까지 끌어올린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중국 요리 특유의 맛을 내는 게 가능하다. 반대로 화력이 약한 가정집 부엌에서 여간해서는 불맛을 내기 어렵다.

동원 불맛 만두

불가능은 없는 것일까. 불맛 짜장과 짬뽕에 이어 불맛 냉동식과 만두까지 출시됐다. 인터넷에는 파기름과 토치, 목초액 등으로 불맛을 내는 갖가지 방법에 대한 토론이 뜨겁다. 불맛을 여섯 번째 맛의 범주로 삼아야할 때가 온 건지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불맛이란 존재하지 않는 맛이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에 우마미(감칠맛)까지, 혀와 입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은 다섯 가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불맛은 환각이다. 입속에서 느껴지는 듯한 불맛은 실은 음식 속의 향기를 내는 분자가 목구멍에서 콧속의 빈 공간(비강)으로 흘러들어가며 느껴지는 냄새, 즉 코의 감각이다. 냄새의 심리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레이첼 허즈 미국 브라운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음식의 ‘맛’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실제로는 미각과 후각이 결합한 풍미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냄새의 영향은 너무도 강력하여, 후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종종 미각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정도다. 후각 상실은 때로 우울증으로 이어질 정도로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 정교한 맛을 느끼기 위해선 향을 느끼도록 천천히 씹어야

음식을 천천히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후각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의 냄새를 두 번 맡는다. 먼저, 음식에 코를 가져다대고 공기를 들이마실 때 느껴지는 정방향의 냄새를 맡는다(정비측 후각). 그 다음으로 음식을 씹을 때 코로 빠져나가는 공기가 전달하는 역방향의 냄새를 맡는다.(후비측 후각) 정비측 후각은 음식의 존재를 알려주고, 후비측 후각은 음식의 풍미를 음미하도록 도와준다. 같이 사는 친구가 숨어서 라면을 먹고 있는 걸 알아차리게 하는 것은 정비측 후각이고, 한입을 간청해서 얻은 라면을 입에 넣고 맛볼 때 느끼는 감각은 후비측 후각이다.

청정원 불맛 고기완자, 산적구이

입에서 감도는 음식의 정교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혀가 아니라 코, 미각이 아니라 후비측 후각 덕분이다. 단시간에 강한 화력으로 조리한 중국 요리라도, 꿀꺽 삼켜서는 후비측 후각을 자극할 수 없다. 작년 1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공학자들은 음식의 풍미를 내는 향기물질을 콧속으로 올려 보내어 후비측 후각을 즐기기 위해서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씹는 게 필수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맛을 이야기하기는 쉬워도 향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입에서 느껴지는 음식의 맛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냄새 덕분이라는 걸 잊기 쉽다. 허즈가 자신의 책 ‘욕망을 부르는 향기’에 쓴 것처럼 대부분의 언어에 후각 경험에 사용되는 어휘 자체가 모자라서 음식의 향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단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체적 풍미를 즐기는 기쁨은 순수한 냄새의 감각에 집중할 때 더 섬세하게 느껴진다. 전문가의 어휘와 권위 없이도 우리는 음식의 맛에서 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맛에서 향으로 변화하는 불맛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정재훈은 과학,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강한 잡식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