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PC 제조사 은 올 하반기 회사 이름을 '델 테크놀로지스'로 바꾼다. 데이터 저장장치 세계 1위 업체인 EMC와의 합병을 완료하고 새로운 사명(社名)으로 출범하는 것이다. 델은 작년 670억달러(약 77조4185억원)를 들여 EMC를 인수했다. IT(정보기술) 업계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었다.

한때 세계 PC 시장을 주도했던 델이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델은 2000년대 초반까지 온라인으로만 제품을 판매해 유통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세계 PC 시장 전성기를 이끌었다. 창업자 마이클 델은 지난 2일(현지 시각) EMC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클라우드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PC 회사에서 클라우드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클라우드(cloud)란 데이터를 개별 PC가 아닌 외부 서버(초대형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으로 원격 접속해 사용하는 기술이다.

델뿐만이 아니다. 인텔·마이크로소프트(MS)·휼렛패커드(HP) 등 PC를 먹거리로 성장해온 '1세대' IT 기업들이 모두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클라우드나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성장 동력에 총력을 다하는 한편, 기존 PC 부문엔 과감한 구조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PC 판매 6분기 연속 감소

이 1세대 IT 기업들이 변신에 나서는 이유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전 세계 PC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당장 도태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1세대 업체들은 대부분 PC 제조나 PC용 소프트웨어 등 PC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해왔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 1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을 6477만대로 집계했다. 전년 대비 출하량이 6분기 연속으로 감소했다. 전 세계 분기 PC 출하량이 6500만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7년 1분기 이후 9년 만이다. 앞으로 하락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모바일 기기 사용이 늘고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산되는 것이 PC 시장 감소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예컨대 과거엔 기업에서 직원들의 책상마다 PC를 한 대씩 설치했지만, 이제는 주요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해놓고 어디서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접속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소프트웨어학)는 "집집이 발전기를 설치하는 대신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변화"라며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기 때문에 2~3년 내 클라우드가 전면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트너는 "최근엔 신흥 시장의 소비자들이 집에 PC를 놓지 않는 현상도 두드러진다"며 "어차피 한 대만 사야 한다면, 스마트폰이 PC보다 구매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PC 보급률이 낮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정용 PC를 구입하지 않고 바로 스마트폰을 사서 인터넷 등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인텔은 클라우드·사물인터넷,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으로 변신 중

PC 시장에서 '윈텔'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도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윈텔은 MS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windows)'와 반도체 기업 인텔의 합성어로, MS의 윈도 운영체제와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한 PC가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뜻이다.

인텔의 브라이언 크루자니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클라우드가 컴퓨터의 미래"라며 "사물인터넷도 클라우드와 결합해 더 큰 부가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드·사물인터넷 시장을 잡기 위한 인텔의 전략은 아마존처럼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업에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버·스마트폰 등에서 현재보다 1000배 빠른 무선인터넷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5G(5세대 이동통신) 반도체를 개발해 판매하는 것이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려면 고성능 반도체 개발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를 위해 반도체 미세(微細) 공정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미세 공정이란 반도체 회로의 선폭(線幅)을 줄여서 회로를 촘촘하게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회로 선폭을 반으로 줄이면 반도체 성능을 2배로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무작정 줄이면 인접한 회로 사이에서 간섭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인텔이 현재 판매하는 반도체의 회로 선폭은 14나노미터(10억분의 14미터)다. 크루자니크 CEO는 "앞으로 7나노, 5나노 이하로 선폭을 줄이는 데 R&D(연구개발) 역량과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 기술을 반격 카드로 내세웠다. MS는 지난 3월 말 개발자 대회에서 "인간 언어의 맥락까지 이해하도록 컴퓨터에 지능을 불어넣겠다"고 선언했다.

PC에서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대신, 앞으로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컴퓨터가 스스로 작동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행사에선 스마트폰 채팅 앱(응용 프로그램)을 향해 "호텔을 예약해 달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예약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사용자가 사진을 올리면 인공지능이 어떤 내용인지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프로그램도 공개했다.

PC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때 세계 1위 PC 제조사였던 휼렛패커드(HP)는 작년 10월 회사를 둘로 나눠 'HP 엔터프라이즈(HPE)'를 새로 출범시켰다. 수익성이 점점 커지는 기업용 제품 부문을 분사하라는 주주들의 압력에 따라 분사(分社)를 단행한 것이다.

HPE는 기업용 서버, 데이터 저장장치, 통신 장비 등을 전담한다. 각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IT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HPE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용 제품·서비스 부문에서 연구 개발(R&D)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