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정부 부처와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협의체'가 출범한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출자(出資)보다는 담보부 대출이 부합한다"고 말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수행한다고 해서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자금을 대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 참석 중인 이 총재는 4일(현지 시각)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의 발권력은 한국은행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을 때만 동원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의 채권을 사들이거나 현금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지원해 주기를 요청하는 정부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총재는 "출자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데 있어 필요한 중앙은행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면서도 "모든 절차는 법 테두리 안에서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2008년 한은 주도로 실시된 은행권의 '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본확충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은행의 자본 여력을 늘려주기 위해 조성된 펀드다. 한은과 산은이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을 담보로 각각 10조원, 2조원을 빌려주고 은행은 그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을 재지원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이 총재는 "자본확충펀드는 직접 출자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중앙은행 기본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상적인 기업조차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을 막기 위해 "회사채 지원,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