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 국면에서 정부는 대규모 실업으로 인한 혼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실업 대책 기금을 마련하거나, 희망 퇴직자를 위한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기업, 노조,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속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세계적 경영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Barton·54) 글로벌 회장은 최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업계 자율에 맡긴다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바튼회장은 1997~2004년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했고 2009년 전 세계 60여 개국 100여 개 사무소를 총괄하는 글로벌 회장에 올랐다. 2008년 대통령 국제자문단 위원장, 2012년 이후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의장을 맡은 '지한파(知韓派)'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회장은 “한국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보면 기업이 풀기 힘든 과제일수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바튼 회장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맥킨지 서울 사무소에서 근무했고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지한파’ 전문가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사의 경우, 경영난과 수주 부진으로 오는 6월 이후 2만명 이상의 대량 실직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부채 비율이 7300%를 넘긴 대우조선의 경우,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으로부터 5조원의 금융 지원을 받으면서 사실상 산은의 자(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해당 회사 노조들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구조 조정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튼회장은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희망퇴직자에 대한 퇴직금 등 실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구조 조정이 진행될 때마다 노조 반발 등 사회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기업이 풀기 어려운 과제인 만큼 정부가 협상 중재자로 나서 타결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튼회장은 "필요하다면 정부가 공적 자금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를 예로 들었다. 한때 세계 1위 자동차 업체였던 GM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던 2009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원에 파산 보호(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당시 GM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지원한 공적자금을 이용해 노조와 빠른 협의를 이끌어 내고 신속하게 구조 조정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정부 지원이 최대 120만명의 대규모 실업 사태를 예방했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당시 미 정부는 GM에 500억달러를 투입했다. 이 중 일부가 희망퇴직자에 대한 퇴직금 등 구조 조정 비용으로 쓰였다. 강성으로 유명한 GM 노조도 정부가 살길을 마련해 주자 신입 직원 임금을 기존 직원의 절반으로 깎는 등의 구조 조정안에 합의했다. GM은 이 덕분에 인건비를 30% 가까이 낮췄고 2013년 말 부활할 수 있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을 "조율자(convener)이자 집행자(enforcer)"라고 표현했다. 적극적으로 나서 신속한 구조 조정이 가능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나서는 것만으로도 기업이나 노조는 구조 조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바튼회장은 "정부가 강제로 기업 간 합병을 추진하는 등 사업 세부 부문에 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선을 그었다. 큰 그림을 보는 정부가 업계의 세세한 사업 흐름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항공업계의 실패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 100여 개 항공사가 난립해 구조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항공사 간 합병으로 독과점 구조가 생기면 소비자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이유로 합병을 막았다. 바튼회장은 "결국 부실기업이 늘어나면서 미국 3위 항공사였던 '유에스항공(US Airways)'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고 말했다. 구조 조정 실패로 당시 미 항공업계가 떠안은 손실만 약 4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튼회장은 "구조 조정 방법이나 방향은 업체들이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뒤에서 구조 조정이 잘 풀리도록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튼회장은 최근 글로벌 조선업계가 위기에 빠진 근본 원인을 '공급 과잉'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조선업계가 살기 위해서는 합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조선 업체들은 대형 컨테이너선과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중국보다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다"며 "조선소들이 방산(防産), 상선(商船), 해양플랜트 등 부문별로 특화한다면 서로간 경쟁 없이 각자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저력을 믿었다. 한국이 슬기롭게 구조 조정을 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 한국인들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새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놀라운 광경이었죠. 요즘도 강연 무대에 서면 한국을 위기극복의 모범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