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수원신갈 톨게이트를 지나 서쪽으로 20분을 달리자 수원시 안에 또 다른 도시가 나타났다.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 416번지. ‘삼성전자 디지털 시티’라고 적힌 입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연구소가 모여있는 삼성 디지털시티의 총 면적은 172만㎡(약 52만평)로 축구장 250개 크기다.
삼성 디지털 시티는 삼성전자의 ‘뿌리’라고 불린다.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1968년 부지를 매입해 TV 생산 공장과 연구소를 건설하면서 가전·전자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은 TV 후발 사업자였던 삼성전자가 금성 등 경쟁자를 제치고 1978년 흑백TV 세계 1위로 올라서는데 밑거름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최첨단 기술을 경쟁력으로 세계 전자업계에서 주름잡을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설립 이후 50년 가까이 지난 2016년 삼성 디지털 시티는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백색가전 단지로 유명하던 이곳은 2001년 정보통신연구소, 2005년 디지털미디어연구소, 2013년 모바일연구소 등이 들어서면서 그 시대의 시장 상황과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날 R1(본관)과 R2(DMC연구소) 연구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마련한 도심공원 센트럴파크를 직원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면적 12만3170㎡(약 3만7528평)의 센트럴파크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키우고 휴식과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로 구성됐다. 특히 센트럴파크 지하는 직원들이 자주 마주칠 수 있도록 모든 연구소와 통하도록 설계됐다.
센트럴파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지하에 마련된 C랩(C-Lab) 존이다. C랩은 삼성전자가 임직원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3년에 도입한 사내 창의아이디어 육성 프로그램이다. 사내벤처 형태로 운영하는 C랩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원하는 직원들이 모여 과제를 진행한다.
그동안 C랩은 사업부별로 흩어져 있었는데, 센트럴파크 내 C랩 메인센터가 들어서면서 전사 차원에서 C랩을 통합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정보기술(IT)·모바일(IM), 소비자가전(CE), 디바이스솔루션(DS) 등 사업부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조직이 협업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센트럴파크 지하 곳곳에서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등 편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찮은 아이디어는 없다’, ‘아이디어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라고 적힌 C랩 존 표어도 인상 깊었다.
C랩 존은 총 4가지 공간으로 구성됐다. 먼저 직원들의 창의성과 집단지성을 모을 수 있도록 각종 워크숍과 토론 등이 가능한 ‘스퀘어’와 시제품 제작실인 ‘팩토리’, 소규모 협업과 휴식을 할 수 있는 ‘라운지’, 상설 전시공간인 ‘갤러리’ 등이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팩토리에는 3차원(3D) 프린트를 비롯해 컴퓨터, 인두, 주파수검침기, 레이저 커터기 등 웬만한 공장 수준의 고가 장비들이 가득차 있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이디어는 생각났을 때 곧바로 실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다음 아이디어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며 “팩토리는 직원들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첨단 장비들로 계속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삼성전자의 C랩은 지난 3년 간 많은 성과를 냈다. C랩은 총 119개의 과제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86개 과제가 완료돼 이중 56개(69%)는 기술이전·선행과제 형태로 사업부에 이관되거나 스핀오프(분사)했다. 나머지 30개 과제는 특허·논문 등을 통해 삼성전자의 기술 자산으로 등록된 상태다. 발굴 과제 중 33개 과제는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스마트TV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가상 채널 서비스 ‘TV 플러스’도 C랩에서 태어났다. TV 플러스는 케이블 등 여러 채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삼성 스마트TV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24시간 무료로 볼 수 있는 서비스다. 2011년에 입사한 사원이 C랩 과제로 낸 아이디어가 1년 여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상용화됐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선보인 '세리프 TV'도 C랩의 작품이다. 마치 가구와 비슷한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세리프 TV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등 수많은 디자인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이 제품은 2년 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 근무하는 과장이 제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후 프로젝트팀이 꾸려져 각 부서의 전문가들이 모여 2년의 연구개발 끝에 만들어졌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세리프TV는 처음 아이디어를 낸 과장이 상사인 부장과 임원들을 이끌고 전체 프로젝트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협업의 사례"라며 "C랩은 젊은 직원들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일을 하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디어가 제품에 반영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