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에바 첸의 인스타그램. 그는 택시 뒷좌석에서 자신의 다리와 신발, 가방, 과일을 함께 찍은 사진을 매일 올리다시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스웨덴 SPA 브랜드 H&M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이 협업한 제품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며칠간 노숙을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 옷들은 모두 발망의 20대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탱이 디자인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HMBalmaination'이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H&M과의 협업을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가장 먼저 알렸고, 이 해시태그는 8만7400여개에 해당하는 포스트에서 회자됐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70만명이 넘는다.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는 여느 광고나 패션지 기사보다 강력하다. 짧은 한마디를 덧붙여 사진의 의미를 보여주는 기호 '#'는 트렌드의 상징이자, 마케팅의 신세계다. 전 세계 사용자가 올리는 하루 8000만장의 사진을 통해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유행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지난해 4억명을 넘었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3월 한국에서 월 1회 이상 서비스를 사용한 월 활동사용자(Monthly Active User)가 600만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인스타그램 패션 디렉터 에바 첸(36)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패션을 민주적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했다. 패션지 편집장 출신인 첸은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이 인스타그램의 사진,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서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마크 제이콥스가 이번 시즌에 왜 베트 미들러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으며, 이 둘은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지를 사진, 동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소비자들은 브랜드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나 이미지를 전달하는 광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야기와 소통을 원한다"고 했다.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은 지난해 발표한 10주년 컬렉션을 구성할 시즌 최고의 옷을 인스타그램 반응으로 선정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패션쇼를 하는 디자이너도 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컬렉션을 공개하고 판매를 하는 브랜드도 있다. 왕은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즉각적이며 민주적인 방식이다"라고 했다. 첸은 "예전에는 패션계를 100명 정도가 움직였다면, 이제는 수백만명 넘는 사람이 같은 정보와 이야기를 공유한다. 인스타그램은 패션계 장막을 벗기는 밧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패션 민주주의'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해당한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중 75%가 미국 외 지역 사용자.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보다 유행을 전파하는 데 더 유리한 이유는 언어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첸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변방의 재능있는 이들이 계속 발굴된다. 나는 얼마 전 '히어나우'란 한국 운동화 브랜드를 인스타그램에서 접하고 운동화를 주문했다. 팔로어 900명밖에 없는, 한국에서도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다"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세대에게 패션계는 물론, 이 세상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