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한국은행까지 동원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이번주부터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가동하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이미 자율협약을 시작한 현대상선과 오는 4일 자율협약 여부가 결정될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또 채권단 자율협약 대상은 아니지만 부실이 심각해진 조선업체들을 구조조정하는 데도 역할을 해야 한다. 이들 기업들의 부실을 상각해 털어내려면 은행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자본확충을 해야 한다.

경제부처 수장들도 잇달아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1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능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수단의 조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한가지 방법을 쓰기보다는 폴리시 믹스(정책조합)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이날 언론사 부장단 간담회에서 “조선업과 해운업에 대한 위험 노출액 대부분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갖고 있다”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확충 대상은 국책은행”이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특히 “한국은행의 출자가 필요할 경우 산업은행법을 개정할 것”이라고도 언급하며 한국은행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비쳤다.

경제부처 수장들이 정부와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필요성을 연달아 언급했지만, 정작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먼저 정부가 할 수 있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의 경우 직접 돈을 투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의 증자에 정부 재정을 투입하려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이 추경 편성 요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호 부총리도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추경 요건이 되기 어렵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때문에 그동안 자주 썼던 방식처럼 정부의 공기업 지분을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실제 구조조정 자금을 공급하는 효과가 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방안 중에는 기존에 지분을 가진 수출입은행에 추가로 자본금을 출자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가 없지만, 지분이 없는 산업은행에 출자하려면 산업은행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 또 한은 출자는 발권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된다.

강봉균 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언급한 한국은행의 산업금융채권 인수 방안 역시 한국은행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때문에 산업은행 출자는 정부가 맡고, 수출입은행 출자는 한국은행이 맡는 방안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국책은행이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제기한다. 강봉균 위원장 역시 후순위채 발행을 언급한 바 있다. 후순위채는 보완 자본 성격이 있어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 계산을 할 때 자본 취급을 받는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발행하면 충분히 소화될 수 있다.

한편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중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한국은행 노조는 지난달 29일 ‘관치금융을 양적완화로 포장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발권력 동원 시도를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