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가 처음으로 일반·연구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안’을 제도화하겠다고 나섰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인 승진을 포기하고, 평생 조합원으로 남아 혜택을 누리겠다는 의도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안에 연구직과 일반직 조합원의 승진 거부권 보장을 명시하자고 사측에 요구했다고 28일 밝혔다. 노조의 이번 임금협상 요구안에 따르면 일반·연구직 조합원 8000여명은 승진 거부권을 통해 조합원 자격이 없어지는 과장 승진 인사를 거부할 수 있다.

현대차에서는 인사·총무·홍보 등을 제외한 일반직(사무직)과 연구직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 조합원 자격이 없어진다. 현대차 노조는 “과장이 되면 연봉제를 적용받고 5단계 인사고과에 따른 압박이 심해 과장으로 승진을 원하지 않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이 승진을 포기하면서까지 조합원으로 남으려는 것은 해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조합원으로서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일반·연구직 입장에서는 강성 노조에 속해 있으면 조합원으로 확실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단체협약이 노조원에 유리한 것도 이점이다. 조합원들은 퇴직할 때까지 호봉승급이 적용돼 임금이 동결돼도 해마다 임금이 오르는 것이다. 승진하지 않아도 차곡차곡 연차가 쌓이면 연봉 1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과장 이상 비조합원은 연봉제를 적용받아 인사고과를 해마다 받아야 해 근무에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또 ‘자동 승진제’를 도입해 조합원들의 대리 승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대리까지는 무조건 승진을 보장받고, 과장부터는 승진 여부를 조합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직장인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반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요구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 자체가 현대차가 ‘노조 천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아니겠냐”고 말했다.

노조는 또 올해 기본급 7.2%에 해당하는 15만2050원 임금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해고자 2명 복직 등의 요구안도 통과됐다.

노조의 승진거부권 제안에 대해 회사 측은 인사권과 관련된 문제인 데다가 어려운 경영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반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등 경영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회사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대기업 고임금 인상 억제를 올해 노동개혁 실천과제로 천명한 정부 시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의 올해 임협 상견례는 5월 중순 이후 열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