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이 내정간섭 비판을 무릅쓰고 왜 우리 국회의원을 찾아가 항의까지 했겠어요."

최근 만난 한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지난 1월 주한(駐韓) 미국·영국·EU·호주 대사가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찾아가 따진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4개국 대사들은 우리 정부가 마련한 3단계 법률 시장 개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FTA(자유무역협정) 정신에 위배된다면서 국회에 항의 방문을 했다. 대표변호사는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건 법률 서비스 산업이 그만큼 돈이 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라며 "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는 데 우리만 유독 규제 산업, 내수 산업으로 치부해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해외 진출도 활발해지면서 투자 자금 조달, 인수·합병(M&A) 등 법률 서비스 수요도 함께 늘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외국 경쟁 회사나 정부가 특허나 공정거래 등을 문제 삼는 법률 리스크(위험 요소)도 함께 커졌다. 하지만 우리 법률 서비스 시장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 상태다. 시장 규모도 수년째 3조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때문에 "법률 서비스 산업을 우리 경제의 신(新)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회장은 "얼마 전 미국 뉴욕을 다녀왔는데 그쪽 로펌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엄청 하는데 왜 한국 로펌은 한 군데도 없느냐'고 묻더라"며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권인데 법률 서비스 시장은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법률 서비스 시장을 키울 토양은 충분히 갖춰졌는데도 이를 활용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 서비스 산업은 다른 산업 경쟁력 향상을 이끄는 전방 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다른 분야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분야로 꼽힌다. 5대 제조업의 경우 매출액 10억원에 고용 효과는 1.08명에 불과하지만 로펌의 경우 같은 매출액에 5명 이상 고용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부가가치율도 139개 세부 업종 중에서 법률 서비스업이 넷째로 높았다. 법무법인 율촌의 윤세리 대표변호사는 "우리 로펌이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법률 서비스 시장을 국가 전략 수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로펌의 현실은 우울하다. 법무법인 화우의 정진수 대표변호사는 "최근 국제 분쟁은 중재 법정이나 WTO(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에서 벌어져 외국의 현지 로펌이 갖는 장점은 이미 퇴색했다"며 "경쟁력이나 비용, 로열티, 비밀 보호 등 우리 로펌이 모든 면에서 우수한데도 관행적으로 외국 로펌에만 사건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 산업 육성'을 외치는 정부도 법률 서비스 시장은 관심 밖이다. 로펌업계에서는 역차별 주장까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법률 서비스 시장을 '전관예우'나 '수임 비리' 등 규제 측면이 아닌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도체나 자동차, 원전, 고속 전철 등 기술력이 전무했던 우리나라 첨단 산업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주력 산업으로 성장했듯이 법률 서비스 시장 역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3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법률 서비스 시장 규제를 개혁하고, 로펌이 경영 혁신에 성공한다면 2020년까지 법률 서비스 수출은 약 3조4000억원 증가하고, 4만3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로펌의 경쟁력 강화와 법률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의 문성우 대표변호사는 "여러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업계 내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 개선하는 노력도 중요하다"며 "업무의 질뿐만 아니라 서비스 마인드가 뒷받침되어야 변호인과 고객 간의 '신뢰'가 쌓이고, 자연스럽게 법률 서비스 산업도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