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뮤지션이자 패션계의 이단아, 프린스"
"부고 소식 후 에펠탑부터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보라색 추모 물결 이어져"
"마이클 잭슨, 지드래곤 등 뮤지션이 추종한 배드보이 이미지"

러플 블라우스, 어깨에 징이 박힌 보라색 수트, 짙은 아이라인… 프린스는 지금까지 유행하는 젠더리스 열풍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뮤지션이다.

4월 22일 새벽 팝의 역사뿐 아니라 패션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큰 별이 졌다. 올해에만 벌써 두 개의 별이 우리 곁을 떠났다. 데이비드 보위에 이어 프린스까지. 갑작스런 이별에 전세계가 슬픔에 잠겨 그를 애도했다.

사망 원인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25일 그의 매제인 마우리스 필립의 말을 인용해 프린스가 154시간 거의 쉬지 않고 일했으며 6일 넘게 잠을 못 자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파리 에펠 타워

애도의 물결은 끝이 없었다. 이날 파리는 에펠 타워의 조명을 보라색으로 바꿨고, 나이아가라는 보라색 폭포수가 되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2016년 5월 2일자 커버를 '퍼플 레인'으로 정하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커버를 사망 당일 미리 발표했다.

팝스타 리한나는 4월 24일 시애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보라색 조명을 받으며 프린스의 곡 ‘Sign O The Times’을 불렀다. SNS에서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하는 글이 넘쳐났고 유튜브의 동영상과 노래를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 노골적인 성 묘사를 서슴지 않았던 프린스의 노래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타워

그런데 도대체 프린스가 누군데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우리나라 팬들이 58년 개띠 스타 중에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가 떠났으니 이제 마돈나만 남았다고 말할 정도로 프린스는 미국인에게 또 세계인들에게 각별한 뮤지션이자 패션 아이콘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만 덜 알려진 편이다.

그 이유는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금새 알 수 있다. 그의 가사는 노골적으로 성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 음탕하기 이를 데 없으며 멜로디 역시 질펀한 섹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끈적거린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논쟁과 가십의 대상이었던 그와 그의 노랫말들-대표 곡인 ‘퍼플 레인’이나 ‘1999’, ‘키스’, ‘웬 도브스 크라이’ 같은 노래들-이 우리나라에는 소개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78년 데뷔 앨범부터 84년 ‘퍼플 레인’, 1983년 ‘1999’ 등 그의 명반들이 속속 발매되며 큰 인기를 누리던 80년대 초중반은 우리나라에서 군부 독재의 검열이 서슬퍼렇던 시절이었다. 그의 앨범이 감히 우리나라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

◆ 화려함과 천박함, 세련됨과 기괴함의 밸런스

당시 팬들이 우리나라에서 그의 음악과 뮤직 비디오를 접할 수 있었던 건 압구정동의 뮤직비디오 카페와 라디오, 그리고 청계천 뒷골목의 빽판 레코드점에서였다.

7살 때부터 기타를 시작으로 피아노와 섹소폰 등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의 음악적 재능과 천재성을 보여준 그는 작곡, 프로듀서, 노래, 연주 뭐하나 못하는 게 없는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동료 뮤지션에게도 많은 명곡을 만들어 주었다. 흑인의 펑크와 백인의 록을 통합해서 그때부터 융합이 뭔지를 보여 준 그는 패션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지 않았다.

뉴요커 표지

퍼플 레인 활동 당시 그는 자신의 상징 색을 보라로 정하고 러플이 화려한 블라우스에 보라색 수트를 입고 등장하곤 했다. 158cm라는 작은 키의 영향인지 몰라도 그는 항상 글래머러스한 하이힐 부츠를 즐겨 신었다. 가끔 반짝이는 금사 판탈롱을 입을 때면 토플리스 차림으로 섹시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음악에 도발적인 차림은 필수 요건이었다.

독보적 음악적 재능과 함께 뛰어난 패션 센스 역시 그의 세포에 살아 숨쉬고 있는 듯했다. 토플리스로 공연을 하거나 아예 누드로 카메라를 응시한 그의 앨범 재킷이 그걸 말해 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그는 지극히 패셔너블 했고 옷을 입는 순간 화려함과 천박함, 세련됨과 괴기스러움을 교묘하게 줄타기했다.

◆ 유니 섹스 유행의 꼭지점에 있었던 프린스

그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는 세계적으로 유니 섹스라는 패션 코드가 대세였고 여자들은 남자처럼 넓은 어깨의 재킷과 맨투맨 티셔츠, 매니시한 청바지를 입었다. 반대로 남자들은 여성스런 파스텔 계열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부풀렸다. 이런 유행 코드의 가장 꼭지점에 늘 그가 있었다.

그의 패션은 파격과 의외성, 섹시함과 저급함, 패셔니스타와 패션 테러리스트의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는 정녕 패션 파괴자였다. 기존의 패션 룰을 정면으로 부수고 그만의 파격적인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으니 말이다.

감히 여자들조차 따라하기 힘든 번쩍거리는 셔링 재킷과 동아줄을 꼬아 놓은 듯 무겁고 커다란 금색 체인 목걸이, 짙은 아이라인, 바로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높은 칼라의 코트 등 다양한 아이템들은 그의 개성 있는 얼굴과 함께 빛을 발했다. 고급스럽지 않은데 사치스럽고, 기괴한데 멋지고, 안 어울리는데 세련되어 보이는 게 프린스를 특징 짓은 트레이드 마크다.

◆ 마이클 잭슨, 배드 앨범에서 프린스의 부풀린 머리 차용

흔히 프린스를 마이클 잭슨과 비교하곤 한다. 같은 나이에, 활동 시기도 비슷한데다 앨범을 내는 시기도 겹치곤 했다. 마이클 잭슨이 굿 보이 이미지였다면 프린스는 배드 보이 이미지였다. 마이클은 그 배드 보이 이미지를 동경했다. 그리고 배드 앨범에서 징 박힌 가죽 재킷과 타이트한 블랙 가죽 바지, 짙은 아이 라인, 부풀린 머리 등을 선보이며 프린스의 이미지를 차용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프린스는 팬들 뿐만 아니라 스타들에게도 패션 영감을 주는 스타들의 스타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키스(Kiss)’ 라는 곡에서 박진영이 보이고 까만 아이라인에서 지드래곤이 보인다.

소위 옷 좀 입는다하는 스타 치고 프린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패션 트렌드 중 남녀의 성별을 넘나드는 젠더리스 패션의 열풍이 거세다. 잠깐 유행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가히 현상이라고 할 만큼 대세가 되었다(80년대에는 이걸 유니 섹스라고 불렀다)

한 때 기호로 불렸던 남자. 프린스로 불렸던 아티스트, 고집스럽게 스타일과 패션을 사랑했고, 그걸 위해 너무 많은 돈과 애정을 쏟았던 우리 시대의 ‘폼생폼사’ 뮤지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패션 에너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프린스는 1978년 1집 앨범을 시작으로 총 32장의 앨범을 냈다. 1980년 발매한 퍼플 레인 앨범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웠고 그래미 상을 7차례 수상했다. 지난 2004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조명숙은 패션미디어 마담 조 대표이자 ‘보그코리아' 전 패션 디렉터 출신 독립 저널리스트다. 프랑스 패션지 ‘마리끌레르’를 거쳐 런던의 센트럴 센 마틴에서 공부했다. 최근에는 강의 활동과 더불어 패션 관련 서적을 집필하고 있으며, 마담 조라는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패션 미디어 혁명을 꾀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마담 조는 올여름 오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