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이어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마저 22일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국내 양대(兩大) 해운사의 운명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 자율협약이 받아들여지면 한진해운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된다. 재계에서는 한진해운 사태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취약 산업의 구조조정을 가속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진해운 5년간 적자 7800억 쌓여

'국내 1호 선사'인 한진해운은 당초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3남인 조수호 회장이 경영했다. 조수호 회장이 2006년 타계하면서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을 맡게 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2009년 한 해에만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2010년 흑자(6866억원)를 기록하며 살아나는 듯했지만 이듬해부터 작년까지 5년간 쌓인 적자만 8000억원에 육박한다. 회사 위상도 추락했다. 2000년대 초반 컨테이너 운반량 기준으로 세계 4위였지만 지금은 9위로 내려앉았다.

결국 최 회장은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조 회장은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을 통한 측면 지원에 나섰다. 한진해운도 적극적으로 자구 노력을 벌였다. 벌크 전용선 사업부,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 부산 신항만 터미널 지분 등 돈 될 만한 자산을 팔아 1조원 가까운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빚은 줄어들지 않고 글로벌 해운업 시황도 더 나빠졌다. 2014년 4월 최 회장은 경영권 자체를 조 회장에게 넘기는 결단을 내렸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동원해 한진해운 살리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대한항공이 2013년부터 한진해운에 지원한 자금만 1조원대에 달한다.

조 회장도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독자적 자구 노력만으로는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가 지원에 나설 경우 대한항공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부채 규모는 작년 말 기준 6조6000억원. 올해 갚아야 할 채권만 600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현재 한진해운의 수익 비용 구조를 감안하면 자금 마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운임은 2010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면서 "반면 선박을 빌리는 용선료는 2008년 이전에 장기 계약하는 바람에 현재 시세보다 5배 이상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화물을 실어 날라도 적자를 메울 수 없는 구조다.

1조5000억원의 사채권자 설득이 관건

한진해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금융권과 해운업계에서는 "앞서 자율협약을 신청한 현대상선 모델을 따를 것"으로 전망한다. 절차상 자율 협약이 확정되기까지는 1~2주일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조건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자율협약 신청 수용 조건으로 6월 말까지 ▲회사채 등 공모(公募) 사채권자들이 보유한 채무 8000여억원에 대한 출자 전환 약속을 받아낼 것 ▲해외 선주사들에서 용선료 인하 약속을 받아낼 것 등을 내걸었다.

둘 다 쉽지 않은 조건이다. 실제 현대상선은 용선료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제2금융 등 사채권자 설득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한진해운은 사채권자를 상대로 "손실을 감수하고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훗날을 기약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한진해운의 사채권 규모가 1조5000억원으로 현대상선(8000여억원)보다 많다는 것.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대신 갚아줄 여력이 안 된다"면서 "사채권자 설득도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진해운, 현대상선과 합병할까

한진해운이 자율 협약을 신청하자 업계에서는 현대상선과의 합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양사는 그동안 합병을 강력 반대해 왔다.

외국은 합병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일반적이다. 현재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도 합병을 통해 성장했다. 싱가포르 최대 해운사 넵튠 오리엔트 라인스(NOL)도 작년 프랑스 해운사가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