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IBM·애플 등 글로벌 IT 대기업들 사이에 인공지능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찾아 인수하는 경쟁이 불붙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일을 하는 인공지능을 선점하는 데는 독자적인 기술보다 기술력을 갖춘 벤처를 사는 게 더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도 인공지능 관련 기술력만 인정되면 수천만달러씩 주고 인수·합병(M&A)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심지어 언제쯤 등장할지도 알 수 없는 기술에도 투자부터 해놓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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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 업체들, 수십 개의 인공지능 벤처 사들여

지난 3년 동안 구글·페이스북·IBM 등 주요 IT 기업들이 인수한 인공지능 스타트업만 20개가 넘는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3건의 M&A가 이뤄졌다.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2013년 사진을 분류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DNN리서치'를 인수한 뒤로, 2014년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딥마인드는 자연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만든 '다크블루랩'과 문자(텍스트)를 이해해 문서를 해독하는 기술을 가진 '비전 팩토리'를 인수했다.

애플도 인공지능을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유망한 차기 시장으로 보고 벤처 인수에 나섰다. 애플이 인수한 대표적인 인공지능 벤처는 시리·보컬IQ·이모션트 등이다. 시리는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 탑재한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를 만들었다. 보컬IQ는 인간의 대화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모션트는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는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IBM은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에 기반한 자연어 분석 서비스를 만든 알케미API를 인수했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올린 게시물을 이해하는 '위트ai'를 샀다.

최근엔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가 인공지능 벤처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세일즈포스는 올해 들어서만 머신러닝(기계학습) 개발 업체인 프레딕션IO와 고객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메타마인드'를 인수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우리나라 이세돌(오른쪽) 9단의 대국이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렸을 때 모습

인수·합병으로 기술력 갖춘 인재 확보

인수된 인공지능 벤처들의 공통점은 각각의 분야에서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 실제 개발까지 마친 곳은 드물다는 점이다. 예컨대 딥마인드는 2년 전 구글에 팔릴 당시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콘셉트만 갖췄을 뿐이었다. 구글은 딥마인드의 창업자인 데미스 허사비스와 개발자들의 능력을 믿고 인수한 것이다. 딥마인드는 구글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알파고 개발을 성공했다. 구글은 딥마인드의 인력을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와 인터넷 검색 분야에 배치해 인공지능 기술을 자사 서비스에 접목하고 있다.

구글의 DNN리서치 인수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세계 인공지능계의 거물(巨物)로 꼽히는 캐나다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 교수다. 구글은 M&A를 통해 힌튼 교수를 영입했고, 현재 그는 구글 인공지능 연구·개발(R&D)의 수장으로 일하고 있다. 힌튼 교수는 이미지만 보고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분류하는 인공지능과 심층신경망 기술을 개발했다.

페이스북은 최근 개최한 개발자대회 F8에서 인공지능 채팅봇(자동 채팅 서비스)을 선보였다. 이 채팅봇은 사용자가 날씨가 어떤지 묻거나, 음식 배달 주문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음식도 주문해주고, 날씨도 알려준다. 여기엔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의 뜻이나 의미를 해석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돼 있다. IBM·애플·세일즈포스 등도 인수한 벤처가 가진 원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결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 대체할 것

IT 대기업이 인공지능에 목매는 이유는 인공지능 기술이 결국 기존 산업을 하나씩 모두 대체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라는 인공지능이 완성되면 지금까지 인간의 영역이었던 운전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병명을 정하고 처방하는 의사도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공장의 공정 관리와 같은 업무는 이미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한 분야다.

IT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모바일로 이어져 왔던 IT업계의 기술 경쟁이 이젠 인공지능으로 옮겨갔다"며 "인공지능을 장악하면 앞으로 10년간 IT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