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올해 3월 18일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6 국제 전기자동차 엑스포’에서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출시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180km로 국내 전기차 중 최장거리라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당초 이날 행사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현대차 아산공장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안내를 맡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은 평소에도 수소연료전지차에 관심이 많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전기차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 전기자동차 엑스포가 올해로 제주에서만 세번이나 열렸지만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은 아직 이 행사를 찾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오너 일가가 친환경차량 중에서도 수소연료전지차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구개발(R&D)의 무게 중심도 수소차에 더 실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전기차 회사가 테슬라가 ‘모델3’를 출시하면서 현대·기아차의 주가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뚜렷한 반전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에 관심이 없는걸까? 아니면 사업역량이 부족한 것일까?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위), GM 쉐보레의 전기차 ‘볼트 EV’(가운데),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아래).

◆ 빗나간 현대차의 예상…’모델3’ 사전 예약 매출 16조, 기아차 1분기 매출보다 3조 많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개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2009년부터다. 현대·기아차는 당시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처럼 빨리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정부의 전기차 보급계획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엇박자를 놓았다.

우리 정부는 2011년부터 국내에서 전기차를 양산, 2015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10%의 점유율(정부 추산 7만8000대)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런 그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대·기아차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현대·기아차의 생각은 달랐다.

이기상 현대차 전무는 2009년 열린 자동차공학회 워크숍에서 “정부는 전기차라는 애드벌룬(풍선)을 띄우고 싶겠지만,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에도 0.8%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미쓰비시가 출시한 전기차 아이미브를 예로 들며 “모닝보다 작은데도 가격이 6000만원이 넘는데 누가 사겠느냐”고 했다.

현대차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테슬라가 올해 3월 말 공개한 ‘모델’3는 일주일만에 32만5000대의 주문을 받았다. ‘모델3’ 한 모델로 140억달러(16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기아차의 한 분기, 즉 3개월 매출(13조원)보다 3조원이나 많다.

현대차는 전기차 성능의 핵심인 1회 충전시 주행거리에서도 ‘모델3’에 뒤지고 있다. ‘모델3’는 한번 충전으로 215마일(346km)을 달릴 수 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한번 충전으로 180km를 달리는 것이 고작이다. ‘모델3'가 서울-대전을 왕복할 때,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편도 밖에 못간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1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6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제네시스 G90’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차의 전기차에 대한 태도는 오너들의 행보에서도 나타난다.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4대 모터쇼 ‘제네바 모터쇼’에 참석했지만 전기차 행사는 지켜보기만 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제네바 모터쇼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최신 기술을 공개하고 미래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다. 정의선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 2016에서도 대형세단 ‘제네시스 G90(국내명 EQ900)을 직접 설명했다.

현대차의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

◆ 현대차, ‘수소차’ 고집…수소차 기술도 도요타에 밀려

현대·기아차는 전통적으로 친환경 차량으로 수소연료전지차를 고집했다. 수소차는 자동차에 저장한 수소를 전기에너지로 만들어 동력을 얻는다. 주행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대·기아차는 2010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수소차 ‘투싼ix FCEV’를 개발했다. 정부가 전기차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시기에 거꾸로 수소차를 내놓았다.

하지만 ‘투싼ix FCEV’는 흥행에 참패했다. 출시 당시 대당 가격이 1억5000만원이 넘었다. 지난해 가격을 8500만원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가격은 넘지 못할 산이다.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연구용으로 수백대를 산 것이 전부다.

현대·기아차가 만든 수소차는 일본 도요타가 만든 수소차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도요타가 2014년 선보인 수소차 ‘미라이’는 가격이 7500만원이다. 투싼 수소차의 절반 수준이다. 한번 충전으로 480km를 달리고, 최고 속도도 시속 178km나 된다.

현대·기아차의 수소차 관련 특허 보유건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2014년 기준 미국 내 수소차 유효특허(핵심특허)수는 GM이 980건으로 1위였다. 2위는 일본 혼다(799건), 3위는 도요타(685건)였다. 닛산과 포드가 218건, 133건으로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 현대·기아차는 126건으로 6위에 그쳤다.

특허수가 적다는 것은 향후 기술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는 물론 수소차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미국에서 등록 대기 중인 특허가 수 백 건에 달해 이 기술을 인정받으면 글로벌 업체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도요타의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

◆ 기득권 놓지 않는 현대·기아차…중소기업은 자체 제작 전기차로 해외 진출

현대·기아차가 유독 수소차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국내에서 누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은 배터리다. 엔진에 집중하고,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 회사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현대·기아차가 만드는 전기차는 LG화학의 배터리를 쓴다.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판매가 늘수록 실속은 LG화학이 다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IT(정보기술) 기업들이 노른자위는 다 가져가고 자동차 회사는 껍데기만 만드는 곳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직접 전기차를 개발해 해외에 선보이고 있다. 파워프라자는 자체 제작 전기차를 지난해 9월 열린 세계 최대 모터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당당히 소개했다.

제2, 3의 파워프라자가 연이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자동차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전기차는 기존 차량과 달리 설계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환경 규제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상황에서 전기차는 피하기 힘든 트렌드”라며 “지금이라도 전기차 관련 산업을 키우고 부품 생산 등 관련 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국내 중소형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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