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2015년식 에쿠스(3800cc)를 탄다. 에쿠스는 휘발유로 가는 대형 가솔린 차다.

2016년 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놓고 전기 자동차 전쟁이 불붙고 있다. 전기 자동차 보급 정책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할 한국의 환경사령탑이 ‘공해 유발자’인 대형 가솔린 세단을 타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 한국인, 한국 기업들이 전기 자동차로의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와 무관한 외딴 섬에 사는 것일까?

지난 달 말 미국의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공개한 ‘모델3’의 돌풍을 계기로 세계가 전기 자동차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르노닛산 카를로스 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시장을 창출할 경쟁자의 출현을 환영한다"고 했고, 디터 제체 다임러 최고경영자(CEO)는 “한 번 충전으로 500㎞를 달리는 전기 자동차를 2019년까지 출시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세계의 ‘반값 전기차’ 열풍은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자동차와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는 실용적인 전기 자동차가 많지 않고 충전 인프라마저 부족, 실생활에서 교통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기 자동차 보조금 정책도 소극적이어서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기 자동차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곳곳에서 정책도, 문화도, 지역적인 교두보도 없다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미국 테슬라가 예약판매를 시작한 보급형 전기차 ‘모델 3’.

◆ ‘서울-대전’도 한번에 못가는 국산 전기차…보조금 신청도 “미달”

테슬라 ‘모델3’가 사전 예약 접수를 시작한 지 단 사흘 만에 27만6000대를 팔아 116억달러(13조원)의 매출을 거둔 비결은 성능 좋은 전기 자동차를 ‘접근 가능한 가격(affordable price)’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3’의 기본 모델의 가격은 3만5000달러(4200만원) 다. 시판 중인 ‘모델 S’나 ‘모델X’ 가격은 6만4000~8만달러다.

가격은 절반 가량 떨어 졌지만, 전기 자동차의 핵심 성능인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주행 거리는 충분히 길다. 한번 충전으로 최대 346km를 주행할 수 있다.

‘모델3’의 대항마로 꼽히는 ‘볼트 EV’는 대당 평균 가격이 3만7500달러(한화 4300만원)다. 한 번 충전으로 200마일(321km)를 달릴 수 있다. 두 모델 모두 한번 충전으로 서울~대전(163km)을 왕복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시판 중인 전기 자동차들은 주행 거리가 150km(1회 충전 기준)에 불과하다. 환경 보호, 저렴한 유지비 등을 고려, 전기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가 구매해도 장거리 주행은 엄두를 낼 수 없다. 가족 또는 사업자들이 타고 다니기에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

한국에서 팔리는 전기 자동차는 기아 ‘레이EV’, ‘쏘울EV’, 르노삼성 ‘SM3 Z.E.’, 한국GM ‘스파크EV’ 등이 대표적이다. BMW ‘i3’, 닛산 ‘리프’ 등 수입 전기 자동차도 있다. 현대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올 6월 판매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 자동차 판매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올 1~3월 국내 시장에서 팔린 국산 전기 자동차는 120대다. 작년 1분기 판매량(220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폭발적인 성장은 커녕 1년 만에 뒷걷음질 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도 미국 연방정부와 마찬가지로 전기 자동차 보조금을 준다. 하지만 신청은 지지부진하다. 제주도가 선정한 전기차 보조금 수혜 대상자는 1500명이다. 당초 목표(4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위), 기아차 ‘쏘울 EV’(가운데), 닛산 ‘리프’(아래).

◆ 주행거리 짧은 국산 전기차…편의 사양만 ‘빵빵’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전기차의 주행거리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단시간에 성능을 획기적으로 올리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대신 핵심 기술인 주행거리를 늘리기 보다 편의 사양을 높이는데 더 신경 쓰는 듯한 느낌이다.

국산 전기차 가운데 주행거리가 가장 긴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한번 충전으로 180km를 갈 수 있다. 충전에 걸리는 시간은 급속 충전 24분, 완속 충전 4시간 25분이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에어백을 7개나 장착했다. 자동차가 보행자와 충돌 위험이 있으면 차량이 스스로 제어하는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면 경고하는 주행조향보조 시스템(LKAS)이 들어간다. 뒤쪽 사각지대에서 다가오는 장애물을 인지해 알려주는 스마트 후측방 경고 시스템(BSD)도 있다.

기아차 ‘쏘울 EV’는 한번 충전으로 145km를 달릴 수 있다. 급속 충전에 24~33분, 완속 충전에 4시간 20분이 걸린다. ‘쏘울 EV’는 무상보증 기간을 10년, 16만km 이하로 설정했다.

자동차 전문가는 “전기차를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주행 거리”라며 “국산 전기차들은 서울에서 대전(163km)까지 겨우 갈 수 있다. 핵심 기술에서 열세를 보여서 그런지 편의 사양을 높여 눈길을 끌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충전 인프라 부족…민간 주도 보급은 한계

부실한 충전 인프라도 전기 자동차 보급 부진의 한 원인이다. 전기차를 구입해 타려 해도 충전할 곳을 찾기 쉽지 않다.

국내 전기 자동차 충전소는 현재 337개(1월 기준)에 불과하다. 서울 42곳, 경기 57곳, 제주 49곳 등이다. 전국 주유소는 1만2400곳이다.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은 휘발유나 경유를 넣을 수 있는 주유소의 3%도 안된다.

GM이 만든 쉐보레 볼트가 미국 디트로이트 GM 본사 앞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하고 있다.

전기차 전문가는 “전기차는 일반차 보다 충전 시간이 길어 충전소 숫자가 주유소보다 많아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전소에서 급속 충전을 하려 해도 완전 충전을 하려면 20~30분이 걸린다. 일반 차량의 주유 시간보다 4~6배나 길다. 일부 민간 기업들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급에 나서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BMW코리아는 2014년 전기차 ‘i3’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이마트 80개 지점에 충전기 120개를 설치했다. 제주도를 포함, 전국에서 250기의 충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도 포스코ICT와 손잡고 가정용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기업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직접 인프라 구축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이 가장 활성화된) 제주도는 말 그대로 전기 자동차의 시험 무대일 뿐”이라며 “내륙에서 전기차 사업이 성공해야 진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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