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뛰는 중국, 한국은?’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모델3’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는 전기차 전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배터리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 기업들은 정작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소형 배터리 시장의 맹주 자리를 한국에 내준 일본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만큼은 결코 뺏길 수 없다는 각오다. 신발끈을 질끈 동여 매고 신제품 개발과 특허 출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을 등에 업고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기술은 일본에 밀리고, 원료와 시장을 중국에 기대고 있는 LG화학(051910)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LG화학 직원들이 배터리 팩을 들고 살펴보고 있다.

일본 LEJ·중국 리셴·위나, LG화학·삼성SDI 맹추격

작년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15.4GWh였다. 2014년(9.7GWh)보다 58% 이상 급성장했다.

배터리 세계 1위 기업은 일본 파나소닉(5.5GWh·시장 점유율 35.9%)이다. 3위, 4위도 일본 기업인 PEVE(9.5%)와 AESC(8.4%)가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시장 점유율 11.2%인 중국의 BYD(1.7GWh)다. 2014년까지 5위였는데 1년 만에 세 계단 올랐다.

한국의 배터리 대표 기업인 LG화학과 삼성SDI의 위상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현주소는 어정쩡하다. LG화학은 소형 배터리 분야에서 삼성SDI에 뒤진 만년 2위 기업이다. LG화학의 작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1.2GWh. 7.7%의 점유율로 세계 5위에 머물고 있다. 0.8GWh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출하한 삼성SDI는 6위(시장 점유율 5.2%) 기업이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일본 LEJ, 중국 리셴·위나에게 쫒기고 있다. 중국은 2014년 6.3%에 그쳤던 시장점유율을 작년 18%까지 끌어 올려 한국(17.7%)을 따돌렸다. 올해, 내년 순위를 장담할 수 없다.

김유탁 한국전지산업협회 연구기획팀장은 “일본이 앞서나가는 이유는 확실한 수요(내수)가 있기 때문”이라며 “전기차 배터리 산업도 든든한 자동차 고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은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사업에 소극적이어서 수출에 목 매는 구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이제부터라도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반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토리 키재기가 아니라 일본·중국 기업에 맞설 특출한 ‘킬러 제품’을 만들기 위해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작년 10월 LG화학이 테슬라와 전기차 ‘로드스터’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파나소닉과 테슬라의 연대를 깬 것 같지만, 실상은 단종 모델인 로드스터의 교체용 배터리 공급 계약이었다.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한 배터리 전문가의 지적은 한국 기업의 초라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 핵심 소재는 일본에 의존...원료는 중국서 사고 중국 시장에 목 매

LG화학 등이 단순히 시장점유율에서 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소재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무리 배터리 껍데기를 잘 만들어도 알맹이를 남이 주지 않으면 변변한 제품조차 만들기 어려운 형편이다.

2000년대 들어 흑연이 2차전지의 주 소재로 사용되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원자재를 경쟁국에서 가져다 쓰니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 악화란 직격탄을 맞는다.

전기차 배터리 선도기업인 일본 기업들이 2차 전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제조를 주도하고 관련 특허를 대거 독점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는 일본 니치아, 음극재는 히타치화성이 세계 시장 1위다. 분리막 분야에선 일본 아사히 카세이와 미국의 셀가드가 1, 2위를 다툰다. 전해액 분야만 한국의 파낙스이텍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배터리 핵심 소재의 독립을 외친지 오래지만, 부품 소재의 전통적인 강국인 일본의 아성을 뛰어넘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지난 3월 제주 국제 전기차 엑스포에서 배터리 팩 기술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 ‘파나소닉-테슬라’ 연대 굳건…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우대 정책에 한국 기업들 한숨만

일본 기업들과 기술 격차는 멀고, 중국 기업들은 물량전을 펴고 있는데,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투자를 장려하면서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을 쓰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테슬라의 파트너인 파나소닉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16’에서 테슬라와 합작으로 세우는 배터리 공장 ‘기가 팩토리’에 16억달러(1조92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36시간 만에 27만6000대가 사전 예약된 테슬라 ‘모델3’의 생산이 본격화 되면 파나소닉의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금보다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 정부는 최근 BYD 등 중국 회사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와 상용차에 정부 보조금 지원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삼원계(니켈카드뮴망간·NCM) 배터리에도 보조금을 달라고 우리 정부가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를 고집하면 중국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LG화학 등은 큰 타격을 입는다.

올해 중국 전기버스·상용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는 1만8500MWh다. 전기버스·상용차용 배터리를 제외한 일반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1만4012MWh)보다 30% 이상 크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중국 정부의 결정을 기다려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자국 기업 우대라는 방침은 변함이 없을 전망”이라며 “중국이 ‘기회의 땅’에서 ‘무덤’으로 바뀔지는 중국 정부의 결정에 달렸다”고 말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애만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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