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일하는 조선비즈는 ‘구글독스(google docs)’ 등 웹 오피스를 활용해 기사도 쓰고 결재도 한다. 노트북의 웹브라우저도 구글의 ‘크롬’을 쓴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구성된 포인투랩이 ‘포인투 크롬북11’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용기를 꼭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21만9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 눈길을 끌었다. 이 제품을 한달 이상 써봤고 포인투랩의 창업자들과 만나며 궁금증도 풀었다.

◆ 가벼운 무게 최고, 세련된 디자인 눈길...키보드는 아쉬워

국내 유통되는 노트북의 운영체제는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윈도’다(우리나라 윈도 PC 점유율 97.85%). 크롬북은 윈도나 애플의 맥 OS가 아닌 구글의 크롬 OS로 구동되는 노트북이다. 대부분 응용 프로그램을 웹으로 지원하는 게 특징이다.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다.

골판지 박스 포장지에서 꺼낸 크롬북11의 첫 인상은 꽤 괜찮았다. 둥글게 처리한 노트북 모서리, 미세한 무늬가 들어간 케이스, 포인투랩의 로고 등이 어우러져 세련미를 뽐냈다. 그러나 20만원대 가격에 맞추기 위해 저사양 디스플레이를 택하다 보니 연한 회색 글자의 경우 흐릿하게 보였다. 자판과 기자와의 궁합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손가락에 힘주는 것보다 더 쉽게 눌러지는 것 같았다.

크롬북11 포장
크롬북11 외관

흥미로운 것은 크롬북에 익숙해질수록 아침마다 손이 가는 노트북은 기존 노트북이 아니라 크롬북11이라는 점이다. 무게(1.15Kg) 때문이었다.

크롬북이 가벼운 것은 제원과 관련 있다. 크롬북11에는 록칩(ROCKCHIP) 3288 1.8GHZ 쿼드코어, 16기가바이트(GB) EMMC 스토리지, 2GB DDR3L 메모리가 들어있다. 록칩은 인텔도 투자한 중국의 칩 제조회사다. 록칩 3288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RM 계열의 프로세서로 전력 소모량이 적다.

전력 소모량이 적으면 노트북이 열을 받을 일도 없고 열을 낮추는 쿨링팬도 필요없다. 쿨링팬이 없으면 노트북이 가볍고 조용하다. 보통 노트북의 경우 어댑터 무게도 상당한데, 크롬북11의 어댑터는 스마트폰 어댑터보다 약간 큰 수준이었다. 전력소모량이 적어 어댑터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

아침에 크롬북11을 선택하는 또다른 이유는 빠른 부팅 속도 때문이다. 기자가 재어보니 대략 4~5초만에 노트북을 쓸 수 있었다. 포인투랩 홈페이지에는 부팅 시간이 7초라고 적혀있지만 그보다 시간이 짧았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는 것처럼 잠깐 크롬북11을 켜고 메시지나 메일을 점검하다보면 결국 크롬북11을 들고나오게 된다.

크롬북11의 어댑터(오른쪽)는 가벼웠다. 기존에 쓰던 노트북의 어댑터와 비교해봤다.

◆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노트북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크롬북은 바탕 화면이라는 게 없다. 부팅하고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왼쪽 하단 자리에 검색 아이콘이 있다. 이 아이콘을 누르면 구글 검색창과 최근에 쓴 웹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 나타난다. 각종 애플리케이션은 크롬 웹스토어라는 온라인 장터에서 구할 수 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을 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단, 크롬북에 구글 계정이 아니라 손님으로 로그인 하면, 내가 만들어놓은 북마크가 뜨지 않거나 애플리케이션이 작동하지 않는다. 크롬북은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해야 제대로 쓸 수 있다.

크롬북11을 부팅하고 로그인하면 나타나는 화면. 왼쪽 하단의 검색 아이콘을 누르면 위와 같이 구글 검색 창과 최근에 쓴 애플리케이션이 화면이 나타난다.

PC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면 크롬북의 활용도는 높아진다. 무거운 소프트웨어를 PC에 직접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PC가 버벅거리는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용자가 OS를 업그레이드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사용자도 모르게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문서를 PC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 드라이브에 생성, 저장하기 때문에 노트북을 바꾸더라도 문서를 백업(back up)하거나 마이그레이션(migration)할 필요가 없다. 사내 전산팀도 구글 계정을 통해 크롬북을 통제할 수 있어 유지, 보수, 관리가 쉽다.

사실 하드웨어인 크롬북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위에는 드러나지 않는 방대한 구글 서비스나 웹애플리케이션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령, 구글이 제공하는 ‘키오스크 모드’를 활용하면 크롬북을 도서검색 화면만 띄우는 키오스크로도 사용할 수 있다.

구글 본사와 오랫동안 협업을 해온 포인투랩 이진우 팀장은 “보통 학교 현장에 가면 학생들이 공용 컴퓨터에 이것저것을 깔아 고장나는 경우가 많고 컴퓨터 관리자들이 유지보수하느라 애를 먹는다”면서 “크롬북은 저가인데다가 웹으로만 접속하게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어서 미국 교육용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 곧 나온다는 고사양 크롬북 기다릴 것

크롬북11을 쓰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프로 바둑 9단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3월 9일~15일)이 열렸다. 속보 경쟁도 해야 하는 데 크롬북11을 들고 현장에 나갈 자신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노트북으로 전장에 나갔다가 버벅거리면 어떡하나’, ‘인터넷이 끊어지면 아무것도 못할텐데’ 등 걱정이 앞섰다.

크롬북11에 적응기간이 있었다면 달랐을 테지만 대국을 취재할 때는 익숙한 노트북을 썼고 대국 이외 현장을 취재할 때는 크롬북11을 들고 다녔다. 크롬북만으로 한달 버텨보겠다는 당초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다.

취재 현장에서 크롬북을 쓴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 뱅킹 등 크롬북에서 불가능한 업무가 발생하면, 집에 있는 데스크톱 PC를 활용하거나 가족에게 부탁했다. 아래아한글 문서를 읽을 수 없을 때는 스마트폰에서 아래아한글 보기 프로그램을 활용해 읽었다.

크롬북11 키보드

종합적으로 보면 낮은 가격, 가벼운 무게와 짧은 부팅 시간이 만족스러웠고 PC에 잡다하게 문서를 저장하거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크롬북은 원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부족 문제가 아쉬웠다. 기사를 쓰다보면 여러 개 창을 동시다발적으로 열어 놓을 때가 많은 데, 메모리 부족 때문에 웹페이지가 종료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만약 크롬북11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성능이 좋은 크롬북이 나온다면 개인적으로 테스트용이 아니라 실전용으로 구매할 의사가 있다. 포인투랩에 가보니 차기 제품으로 고급형 크롬북의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제품의 상세 제원은 알 수 없었다. 어정선 포인투랩 대표는 “비싸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고급형 제품도 40만원 안팎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래아한글을 문서 도구로 쓰는 사용자라면 크롬북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품일 것이다. 크롬북은 새 세상이다. PC 자체가 아닌 웹에서 모든 것을 하겠다는 태도로 임해야 크롬북에 만족할 수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기자는 고사양 크롬북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