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 완화'를 들고나왔다. 한국은행이 채권을 대량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이 돌게 하자는 주장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들은 언급을 꺼린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부터 "공약은 존중한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른 간부들도 죄다 입조심하는 분위기다. 국장급 간부 A씨는 "이럴 땐 꿀 먹은 벙어리 모드가 최선"이라고 했다.

기재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이유가 있다. 4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호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재부는 각 정당의 복지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여야의 복지 공약을 모두 시행하려면 최소 268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무맹랑한 공약에 일침을 가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셌다. 행정부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불붙었고, 야당은 당시 박재완 기재부 장관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기재부에 경고를 하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그래서 한국판 양적 완화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가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몸조심하는 것이다. 일부 간부는 "양적 완화는 한은과 밀접한 이슈다. 기재부는 한발 떨어져 있지 않으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여당에서 제시한 방안이 한 번도 가동해보지 않은 정책이라는 점에서 경제 관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개인 견해라는 걸 전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찬성파인 국장급 B씨는 "지금은 워낙 경기가 나빠 뭐든 해볼 때다. 원화 가치가 자연스럽게 떨어져 수출에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과장급 C씨는 "기준금리가 제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 완화를 하는 건 해외에도 전례가 없어 위험하다"고 했다. 양적 완화 논의가 관가(官街)에서는 지금 물 밑에 가라앉아 있지만 총선이 끝나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당정(黨政) 협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시끌벅적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