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집트 남쪽 사막에서 선사시대 동굴이 발견됐다. 벽에는 수많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0㎞ 떨어진 지점에서 먼저 발견된 '와디 수라(Wadi Sura)' 동굴의 이름을 따서 '와디 수라2'란 이름이 붙었다. 와디 수라는 아랍어로 '그림의 계곡'이란 뜻이다. 그림의 연대는 8000년 전으로 추정됐다. 벽에는 사람 손도장도 여럿 있었다. 벽에 손을 대고 테두리에 물감을 찍어 손 모양을 남긴 그림이다. 그런데 손도장 안에 작은 손도장이 13개나 찍혀 있었다. 이 손도장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8000년 전의 동굴벽화. 성인의 손도장 안에 보이는 작은 손도장은 아기가 아니라 도마뱀의 다리로 밝혀졌다.

일단 큰 손도장의 정체는 2013년 연구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딘 스노 교수는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손도장 주인은 여성이라고 발표했다. 그 전까지는 제사장인 남성이 벽화를 그렸고 자신의 손도장을 남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노 교수는 해부학적 증거를 들어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사람의 손가락 길이는 태아 시기에 결정된다. 넷째 손가락인 약지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둘째 검지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다. 덕분에 남성은 약지가 검지보다 길고, 여성은 두 손가락이 거의 비슷하다. 동굴벽화의 손도장은 대부분 약지와 검지가 비슷한 길이였다. 선사시대 화가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손도장은 어머니나 할머니를 따라온 아기의 손이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맥도널드 고고학연구소의 이매뉴얼 오노레 박사는 산부인과에서 산모들의 협조를 얻어 신생아들의 손가락 길이를 측정했다. 아기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과학에 기여한 셈이다. 동굴의 손도장은 신생아들의 손과 달랐다. 놀랍게도 그 손은 사람 것이 아니었다. 오노레 박사는 지난달 초 '고고 과학 저널'에 "작은 손도장은 사막에 사는 도마뱀의 앞다리와 일치했다"고 밝혔다. 손도장이 아니라 발도장이었던 것.

큰 손도장과 작은 손도장은 같은 시기, 같은 물감으로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혹시 여성 작가가 남긴 손도장이 채 마르기 전에 우연히 도마뱀이 발을 댄 것일까. 작은 손도장은 큰 손도장과 마찬가지로 손을 벽에 대고 주위에 물감을 문질러 정교하게 만든 형태였다. 우연히 지나가던 도마뱀이 남길 수준의 그림이 아니었다. 오노레 박사는 "당시에는 인간이 더 큰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람이 도마뱀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똑같은 하늘의 피조물(被造物)이라는 자격으로 손도장을 남겼다는 말이다.

와디 수라 동굴은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English Patient)'로 이미 유명세를 치렀다. 1만년 전에 그린 벽화로 가득 한 와디 수라 1 동굴은 1933년 헝가리의 라슬로 알마시 백작이 처음 발견했다. 동명(同名)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에서는 알마시 백작이 탐사를 도운 동료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다. 결국 남편의 복수로 여자는 죽고 알마시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이탈리아 야전병원에서 억양 때문에 '영국인 환자' 즉,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불리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사막만큼 덧없고 쓸쓸한 사랑과 복수, 후회가 담담하게 묘사된 수작(秀作)이었다.

물론 영화에서 알마시 백작의 사하라 사막 탐사와 와디 수라 동굴 발견은 사실이지만, 이후 얘기는 모두 꾸며낸 것이다. 알마시 백작은 2차대전 종전 직전 이탈리아가 아니라 1951년 오스트리아에서 이질로 죽었다. 그럼에도 와디 수라 동굴의 벽화 사진을 보면 영화에서 본 젊은 탐험가의 탐욕에 가까운 열정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런 열정이 동굴벽화부터 지금의 문명까지 탄생시킨 인류의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