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련 정책에서 금리정책을 쓰기 어려운 경우 주택대출의 급격한 증가를 억제하는 데는 DTI 상한을 도입하거나 인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는 주택관련 세제를 강화하는 것이 좋다.”

“국제기구는 연구만 하는 학교와 다르다. 어려운 경제용어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쓸 수 있는 어학 실력이 필요하다. 전공 분야 이외에도 역사와 인문, 과학 등 많은 분야의 책을 읽고 유용한 표현을 평소에 익혀야 한다.

심일혁(46) 박사는 국제결제은행(BIS)에 근무하는 이코노미스트다.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한다. 국제결제은행은 국제금융 안정을 목적으로 각 나라 중앙은행의 관계를 조율하는 국제 협력기구로 스위스 바젤에 있다.

심 박사는 서울 휘문고등학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 89학번으로 입학했고, 1992년 행정고시 36회로 합격했다. 이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다 유학길에 올랐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심 박사는 국제통화기금(IMF) 방문연구원을 거쳐 BIS에 이코노미스트로 입성했다. BIS 이코미스트가 된 첫 한국인이기도 하다.

심 박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하는 데는 다른 경제학자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많이 붙었다. 답변 하나하나에 BIS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미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 외에는 제한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 같은 것은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심 박사는 기자의 질문을 번역해 영어 질문으로 만들고, 답변서를 작성해 BIS의 승인을 받은 다음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보내는 복잡한 과정 속에서도 기자를 최대한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BIS의 이코노미스트는 정책 결정자나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그의 답변과 실제 행동이 일치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해 주로 연구한다. 특히 금융안정 측면에서 이들의 역할과 영향 등을 분석하는 것이 주요 주제다.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여러 국가,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연구한다.

구체적으로는 은행규제와 거시건전성 정책, 자본유출입 관리 정책, 주택시장 정책, 국가간 자본이동, 자산운용회사와 기금, 은행의 해외영업, 채권시장, 파생상품시장 등이 주제가 된다.”

- 국제결제은행(BIS)에 한국인 이코노미스트가 드문 것으로 안다. BIS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BIS가 중점을 두는 금융규제와 금융안정 등의 이슈에 관심이 많아 지원하게 됐다. 현실적인 정책 이슈를 다루면서 연구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BIS가 매력적이었다.

박사과정 시절 친하게 지낸 이탈리아 친구가 먼저 BIS에 취직했는데 이 친구의 권유도 영향을 줬다. 사실 BIS에서 일하고 나서야 내가 첫 한국인 이코노미스트인 것을 알게 됐다.”

- BIS에 대해 소개해달라. 국제통화기금(IMF) 등 다른 국제기구와는 어떻게 다른가.

“BIS는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모여 1930년에 설립한 국제기구다. 현재 60개 중앙은행이 회원이다. 1945년 설립된 IMF의 주요 참여자가 188개국 재무부인 것과 회원의 구성이 다르다.

BIS는 특정 국가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기보다는 여러 나라에 동시에 적용되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 중앙은행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논의의 장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반면 IMF는 회원국의 경제 상황과 정책 방향 등을 평가하고 정책적 권고를 한다. 위기에 처한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IMF에는 1000명 이상의 이코노미스트가 있다. 이들은 지역별, 정책별로 나뉜 부서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안다. BIS에서는 60여명의 이코노미스트가 ‘화폐 및 경제부(Monetary and Economic Department)’라는 한 조직에 근무한다. 조직은 BIS가 좀 더 수평적이다.”

- 지금도 BIS의 유일한 한국인 이코노미스트인가?

“아니다. 2014년 5월에 신현송 박사께서 BIS에 합류했다. 신현송 박사는 BIS의 조사국장 및 경제고문을 맡고 있다. 조사국장은 BIS의 모든 연구 활동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자리다. 경제고문은 BIS를 대표해 세계 경제에 대한 BIS의 공식 견해를 밝히는 자리다.

신 박사는 BIS의 인력이 몇 가지 주요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도록 장려한다. 연구 조직이 작은 만큼 이 방식이 연구 역량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신 박사의 연구를 보면 엄밀한 경제이론, 공고한 실증분석, 실제 적용 가능한 정책적 함의 간의 균형이 매우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또 시의적절한 주제를 미리 찾아 연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신 박사와 공저자로 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좋은 기회다.”

- 관심을 갖고 연구 내용을 참고하는 국내 경제학자가 있다면.

“고려대 김진일 교수와 김우찬 교수, 서울대 김소영 교수와 윤택 교수, 연세대 장용성 교수가 연구하는 내용에 관심이 많다.

외국인 중에서는 스탠퍼드 시절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나랴아냐 코처라코타(Narayana Kocherlakota) 교수의 연구를 계속 참고한다. 코처라코타 교수는 미네아폴리스 연방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현재 로체스터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하다 유학을 갔다. 공무원 신분으로 외환위기를 겪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 한국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어땠나.

“1999년 여름에 유학을 갔다. 한국이 이미 IMF의 대출금을 상환하기 시작한 시기다. 당시 기업과 금융 부문 구조조정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미국 학계의 평가는 2001년 초 조세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와 나눈 대화가 참고가 될 것 같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이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빠른 성장을 한 것을 근거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반면 나는 과도한 차입에 기반한 재벌 위주 경제 성장 모델의 한계와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오히려 덜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토론을 했다.

당시 토론을 회상하면 한국은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경제성장 관점에서 성공적인 예로 꼽히는 모범 국가였던 것 같다. 반면 미국에서 아시아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미국의 관점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느라 특수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 본인의 대표적인 연구들을 소개해달라.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은 2007년 BIS 통화경제국장인 클라우디오 보리오(Claudio Borio) 박사와 함께 쓴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데 거시건전성 정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What can macroprudential policy do to support monetary policy?)’ 라는 논문이다.

이 연구는 인플레이션이 낮거나 안정적인 수준이어서 중앙은행이 과도한 신용팽창과 자산가격 상승 같은 금융 불균형을 금리정책을 통해 억제할 여지가 적은 경우, 거시건전성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보인 논문이다. 또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상호보완적인 역할이 중요함도 강조했다.

실증분석한 결과를 보면 아시아와 유럽의 18개국이 취한 거시건전성 정책들이 신용팽창과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 이 논문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나왔다. 당시만 해도 거시건전성정책에 대한 실증분석 논문이 많지 않아 많이 인용된 것 같다. 이후에는 주요 20개국(G20) 등을 중심으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실증분석 논문이 많이 나왔다.

두 번째로 많이 인용된 논문은 케네스 쿠트너(Kenneth Kuttner) 윌리엄스칼리지 교수와 지난 2013년에 쓴 ‘비금리정책이 주택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 57개국에 대한 연구(Can non-interest rate policies stabilise housing market? Evidence from a panel of 57 economies)’다.

이 논문은 금리정책 이외의 정책이 주택대출과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본 논문이다. 비금리정책에는 금리정책을 제외한 통화정책, 주택대출관련 건전성정책, 주택구입 및 보유와 관련된 조세정책 등이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모두 포함된 57개국을 대상으로 이들이 지난 30년 동안 쓴 정책들을 직접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를 이용해 다양한 통계 기법으로 실증분석을 했다.

분석 결과 주택대출의 급격한 증가를 억제하는 데는 소득 대비 대출상환금 비율인 DTI 상한을 도입하거나 인하하는 것이 일관된 효과를 보였다.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는 주택관련 세제를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 금리가 주택 대출과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통화정책은 경제주체가 하는 지출의 시점간 분배를 통해 작동한다. 팽창적 통화정책, 즉 금리인하는 미래 지출을 현재로 당겨오게 하는 효과가 있다. 가계가 차입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다른 변수가 일정하면 늘어난 가계차입은 주택수요를 증가시킨다.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도 금리를 활용한 통화정책은 역시 효과가 있었다. 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다음 분기에 주택대출 증가율은 0.67%포인트 낮아지고 주택가격 상승률은 0.49%포인트 낮아졌다. 1년이 지나면 효과는 더 커졌다.”

- 최근에 진행한 연구는 어떤 것이 있나.

“BIS 신현송 국장 등과 지난 1월에 ‘정부채권 수익률과 환율절상에 따른 위험추구경로(Sovereign yields and the risk-taking channel of currency appreciation)’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신흥국 환율의 절상이 신흥국 정부 채권의 가산금리를 감소시키고, 신흥국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펀드들의 투자 자금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채권 가산금리가 내려간 것은 미래 금리변동에 대한 기대보다는 위험프리미엄(risk premiun)이 감소한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미국 달러화 환율이 아닌 무역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적용한 실효환율은 신흥국 정부채권 가산금리와 신용위험 가산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이 연구에서 입증했다.

또 다른 연구로는 ‘신흥국 시장과 자산운용사(Asset managers in EMEs)’가 있다. 최근 신흥국 자산 시장을 보면 대규모 자산운용사가 중요한 투자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신흥국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때문에 정책당국자들이 이들의 활동을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만 초점을 두면 안 된다. 규모가 작은 자산운용펀드도 특정 신흥국 시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큰 펀드의 영향과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돈을 맡긴 고객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이들의 펀드매니저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 등을 보면 펀드들의 투자패턴 동행성은 높게 나타난다. 동행성이 높아지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서 가격 변동을 심화할 수 있다. 2014년에 동료와 진행한 이 연구에서 신흥국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투자금액과 신흥국 자산가격이 서로의 변동성을 증폭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2015년 신현송 국장 등과 함께 쓴 ‘채권펀드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와 펀드매니저 채권 매각 간 상관관계(Investor redemptions and fund manager sales of emerging market bonds: how are they related?)’에서는 신흥국 채권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때 각 펀드에서 보유한 채권을 판다면 펀드매니저들이 동시에 자발적으로 채권을 파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실증분석으로 보였다.”

-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채권 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시작됐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BIS에서 지난해 말 분석한 것을 보면 금융시장이 이전보다 다소 불안정하고 신흥국 거시경제지표에 대한 전망이 악화하며 미국 금리변동에 대한 민감도는 높아졌다. 신흥국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부정적 파급효과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보고서는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신흥국의 금융불안정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흥국은 최근 수 년 동안 급격하게 신용이 팽창했다. 이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있었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쉬웠기 때문이다.

브릭스 국가의 경우 201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신용의 평균치가 2010년보다 25% 높아졌다. 저금리 상황이지만 늘어난 부채 때문에 가계 및 기업의 소득 대비 부채 상환금 비율은 장기 평균보다 높아진 상태다. 신용위험이 커진 신호인 셈이다.

만약 달러가 꾸준히 절상된다면 달러 차입이 많은 신흥국 기업의 부채상환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전통적인 거시경제 관점에서 보면 달러가 강세이고 신흥국 통화가 약세인 경우 수출에 도움이 되고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신용위험이 커진 경우 달러를 공급하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신흥국에 대출할 유인이 줄기 때문에 이에 따른 자본 유출이 신흥국 환율을 추가로 악화시킨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BIS 부총재는 최근 연설에서 세계금융 사이클과 자본이동은 신흥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많은 선진국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국제기구 취업을 원하는 후배를 만날 때마다 꼭 강조하는 것이 있다. 첫번째는 영어 회화와 발표, 작문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BIS같은 국제금융기구는 학술적인 연구를 중요시하는 대학과 다르다. 정책 입안자와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연구 내용을 알기 쉽게 발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영작문 실력을 늘리려면 전공 서적과 업무 관련 문서 이외에도 역사와 인문, 과학 등 많은 분야의 책을 읽고 유용한 표현을 평소에 익혀야 한다.

두번째로는 주력 분야를 정하고 자신만의 견해와 문제해결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기구가 직원을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때 국적을 포함한 정치적인 고려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은 필수적이다. 조직 내에서 또는 다른 곳으로 옮길 때도 이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적인 사고와 국제적인 사고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으로 국제기구에 근무하면 한국과 관련한 이슈에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