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한 달 새 50% 이상 치솟았다. 주요 산유국들이 생산량 동결(凍結)을 위한 공조에 나섰고 재정난에 빠진 미국 셰일업계는 원유 생산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기름값도 반등세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36주 연속 하락했던 국내 휘발유 가격은 3월 셋째 주에 리터(L)당 7.7원 오른 1348.1원을 기록했다.

"산유량 동결 가능성"이 好材로

이달 17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전날보다 1.74달러(4.52%) 오른 배럴당 40.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올 2월 11일(배럴당 26.21달러) 이후 한 달여 만에 53% 정도 오른 것이다. 이날 런던시장의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1.21달러(3.0%) 오른 배럴당 41.54달러에 마감됐다.

산유국들의 공조 움직임이 유가 상승을 견인했다. 세계 원유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산유국 15개국은 다음 달 카타르에서 산유량을 올 1월 수준으로 동결하기 위한 회담을 열 예정이다. 15년 만에 처음 산유량 제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美 셰일업계도 增産 힘들어

미국 원유 생산량을 10년 만에 2배로 늘렸던 미국 셰일업계에서 대다수 업체가 재정난에 빠진 것도 호재로 꼽힌다. 미국 신용정보업체인 크레딧사이츠는 "파산을 신청하거나 이자 상환을 중단한 미국 에너지 업체가 지난해 26개에서 내년에는 73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 유가가 올라도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셰일오일 시추 장비의 60%가 저유가 기간에 방치돼 재정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석유업계에서 지난해 11만명의 인력이 줄어든 탓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올해 미국 원유 생산이 작년보다 하루 평균 60만 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최대 200만 배럴 在庫가 변수

하지만 세계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석유 재고가 쌓여 있는 게 유가 상승의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원유는 하루 100만~200만 배럴씩 재고 물량이 쌓이고 있다. 한국 석유 소비량의 40~80%에 육박하는 물량이다.

재고가 쌓여 있는데도 유가가 오르는 건 투기 자본이 원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요인이 크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최근 국제 원유 시장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펀더멘털이 아니라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에 의해 요동치는 측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으로 국내 정유 4사는 올해도 총 4조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던 지난해 이상의 실적을 기대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를 들여와 정제해 판매할 때까지 한 달쯤 걸린다. 한 달 전보다 유가가 50% 정도 오르면 정유사들은 앉아서 떼돈을 벌게 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과 화학제품 시황이 양호해 올해도 지난해 이상 이익을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