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닷컴은 최근 셀카(셀프 카메라)로 상품 대금을 결제하는 소프트웨어(SW)를 특허 출원했다. 방식은 단순하다. 먼저 아마존의 온라인·모바일 쇼핑몰에서 물건을 선택한다. 결제 과정에서 '구매(Buy Now)'를 누르면 스마트폰이나 PC 화면이 카메라 모드로 바뀌고,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고객의 얼굴을 자동으로 사진 찍는다. 그리곤 "오른쪽 눈을 깜박여 주세요(Please blink your right eye.)"라고 요구한다. 고객이 한쪽 눈을 감으면 또 한 번 셀카를 찍는다. 그러면 화면에 '결제 완료' 표시가 뜬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지 않고도 물건을 사고 결제하는 시대가 열렸다. 사람 얼굴을 인식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 사람의 신용카드 정보로 대금을 치르는 기술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고객은 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살짝 웃어주거나, 상점 계산대에 가서 카메라를 한 번 쳐다보면 된다. 구글·아마존·애플·삼성전자·알리바바 등은 연달아 간편결제 기술을 선보이며 지갑을 대체할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건을 고르고, 눈을 깜박이면서 2차례 셀카만 찍으면 구매가 완료되는 안면(顔面) 결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사전에 등록한 고객의 얼굴과 셀카 사진을 비교해 '생체 본인 인증'을 진행한 뒤 본인이 맞으면 미리 등록해놓은 신용카드로 결제를 진행한다. 사용이 간편하면서도 해킹과 같은 위험에 대응하는 보안은 예전보다 훨씬 강력하다.

중간에 눈을 깜박이게 한 건, 미리 찍어놓은 사진으로 불법 결제하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다. 왼쪽 눈을 깜박이거나, 고개를 흔들라고도 할 수 있다. 웃으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절차다.

IT(정보기술) 업계에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없이도 대금을 치를 수 있는 간편 결제 기술 경쟁이 불붙고 있다. 좀 더 단순하면서도 보안은 철통 같은 결제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구글·애플·아마존·삼성전자·알리바바·화웨이와 같은 IT 기업들이 결제 전쟁에 참전했다. IT발 '신(新)화폐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얼굴로 결제하세요" 아마존·구글의 '얼굴 비밀번호'

구글은 이달 2일 새로운 결제 기술인 '핸즈 프리(Hands Free)'를 시범 서비스 한다고 밝혔다. 고객이 마트·커피숍·편의점 등의 계산대에서 지갑이나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 없이 점원에게 '구글로 결제할게요(I will pay with google.)'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결제가 완료되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도 얼굴 인식 기술을 쓴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본인 사진, 이름 이니셜(이름의 앞글자),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한다. 이후 가게 계산대 앞에 가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고객 얼굴을 인식하고, '핸즈 프리'에 입력된 사진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 대금은 미리 등록해둔 신용카드에서 결제된다.

구글은 미국 실리콘밸리 일대의 맥도널드·파파존스 매장과 일부 음식점에서 '핸즈 프리' 서비스를 진행하고 앞으로 적용 지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시범 서비스 지역은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를 비롯해 애플 본사 소재지인 쿠퍼티노, 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팰러알토 등이다. 구글은 자사 블로그에서 "앞으로 마트 계산대 앞에서 신용카드를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질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선 SK텔레콤이 지난 14일부터 'T페이'라는 구글과 유사한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통점은 결제할 때 지갑이나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사용하는 기술은 다르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에 T페이 전용 앱을 깔고 자신의 별명(닉네임)을 정한 뒤,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 기능을 켜놓는다. 그다음엔 매장 계산대에 가서 점원에게 "T페이로 결제할게요"라고 말한다. 이미 T페이 앱은 블루투스를 통해 매장 결제기와 고객 인증 및 결제 정보를 자동으로 주고받은 상태다.

점원은 고객에게 전화번호 뒷부분 4자리나 닉네임을 물어보고 본인임을 확인한다. 고객이 비밀번호(4자리)를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구글과 달리 얼굴 인식을 안 쓰기 때문에 비밀번호로 마지막 보안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결제한 금액은 다음 달 휴대전화 요금에 포함된다. 신용카드가 아닌 소액 결제이기 때문에 월 결제 한도는 50만원이다. T페이는 세븐일레븐·미니스탑·롯데리아 등 전국 1만1000여 개 T멤버십 가맹점에서 이용할 수 있다. T멤버십 포인트로 할인 혜택도 자동 적용된다.

삼성페이는 거의 모든 상점의 카드결제기에서 쓸 수 있는 마그네틱 기술을 사용했다. 최첨단 기술이 아닌, 구형 기술을 선택한 역발상으로 고객의 사용 편의성이 훨씬 좋아졌다.

바코드·마그네틱으로 승승장구하는 삼성전자·알리바바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란 오프라인 결제 시스템으로 1억90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알리페이는 60년 이상 된 구식 기술인 '바코드'에 최신 보안 기술을 결합해 사용한다.

알리페이 앱을 켜서 바코드 화면을 점원에게 보여주면 스캐너로 읽어서 결제가 이뤄진다. 중국 텐센트의 위챗페이도 바코드 방식이다. 바코드의 약점은 보안이다. 몰래 바코드를 사진 찍어두었다가 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알리페이는 '원타임 바코드' 기술을 쓴다. 예컨대 알리페이 앱을 열면 그때부터 3분 단위로 바코드가 바뀐다. 스마트폰을 보유한 고객은 바코드가 계속 바뀌어도 불편함이 없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삼성페이'도 구형 신용카드 결제기의 '마그네틱(magnetic·자석) 기술'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 신용카드를 카드 결제기에 긁으면 뒷면의 마그네틱 띠 안에 담긴 정보가 결제기에 전달돼 대금이 치러진다. 삼성페이는 스마트폰에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코일을 심어놓고, 스마트폰을 결제기에 갖다대면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긁는 효과가 나도록 했다. 결제를 할 때 본인의 지문을 인식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해 보안을 강화했다.

이 기술은 신용카드를 받는 전 세계 대부분 가게에서 곧바로 쓸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예컨대 국내 카드 가맹점의 95% 이상이 마그네틱 방식의 카드 결제기를 보유하고 있다.

아무리 최신 기술이라도 쓸 수 있는 가게가 별로 없다면 무의미하다.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작년 9월에 결제 시장에 뛰어든 삼성페이가 50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며 "17개월 전에 선보인 애플의 애플페이 이용자가 1200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속도"라고 보도했다. JP모건은 "미국 내 90% 이상의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삼성페이의 강점이 앞으로 빠른 이용자 확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페이는 장차 널리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NFC 기술’을 선택했다.

보안에 강한 NFC 결제 확산할 듯

전문가들은 "미래에 가장 폭넓게 쓰일 스마트폰 결제 기술은 NFC가 유력하다"는 입장이다. NFC(근거리 무선 통신·Near Field Communication)는 10㎝ 이내의 짧은 거리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마그네틱 기술은 스마트폰을 결제기에 바짝 갖다대야 하지만, NFC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도 상관없다. 인식 속도나 안정성과 같은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 예컨대 택시나 버스, 지하철을 탈 때 스마트폰을 대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결제를 하는데 이게 NFC를 사용한 것이다.

NFC 기술은 대부분의 IT 업체가 채택하고 있다. 삼성페이는 마그네틱 방식과 함께 NFC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구글 역시 미래 결제 기술로 '핸즈 프리'를 내놨지만, 이미 NFC 방식을 쓰는 '안드로이드 페이'를 선보인 상태다. 바코드 방식을 쓰는 알리바바나 국내 네이버페이 등도 모두 NFC를 겸용으로 쓰도록 하거나, 준비 중이다. NHN엔터가 내놓은 페이코도 NFC 방식이다.

애플의 애플페이는 NFC 방식만 고집하고 있다. 삼성·애플과 함께 3대 스마트폰 제조사로 떠오른 중국 화웨이는 최근에야 결제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역시 NFC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1~2년 새 나오는 주요 스마트폰은 대부분 NFC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장기적인 범용성을 본다면 NFC가 가장 앞서 있는 셈이다.

문제는 NFC로 결제할 수 있는 상점의 수가 여전히 적다는 점이다. 국내엔 10만곳 정도로 추정된다. 중국은 600만~700만 곳 정도다. 하지만 속도의 문제일 뿐 현재 마그네틱 방식의 카드결제기는 머지않아 NFC 기능을 갖춘 기기로 바뀔 전망이다. 마그네틱 카드결제기는 카드 복제라는 보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제 상점 수만 늘어나면, 바코드나 마그네틱과 같은 구식 기술이 NFC를 이기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