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회사원 A씨는 얼마 전 늘 다니던 스포츠센터에 갔다가 문이 잠겨 있어 깜짝 놀랐다. 닫힌 철문엔 '사정상 당분간 문을 닫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종이만 덜렁 붙어 있었다. 놀란 마음에 스포츠센터에 전화해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막막해하던 A씨는 약 3개월 전에 1년치 스포츠센터 이용료 110만원을 12개월 할부로 신용카드 결제한 것을 떠올리고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피해를 설명했다. 카드사 직원은 "스포츠센터 폐쇄를 확인한 후 남은 할부금은 갚지 않아도 되도록 조치하겠다"며 영수증 사본과 스포츠센터 계약서를 보내라고 했다. 약 1주일 후 A씨는 카드사에서 "이미 지급된 3개월치 할부금은 빼고, 남은 9개월치 할부금 약 90만원(할부 수수료 포함)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해 폐업 등으로 남은 신용카드 할부금을 면제받은 소비자가 가장 많았던 업종은 스포츠센터로 나타났다. 신한카드가 지난해 할부 철회·항변 접수 현황을 분석했더니 스포츠센터가 전체 접수 건수의 38.2%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철회'(결제 후 7일 이내)와 '항변'(할부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은 카드 가입자가 상품·서비스를 받지 못했을 경우 남은 할부금을 면제해달라고 카드사에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먹튀' 1위는 스포츠센터… 학원·미용도 '위험'

금융위원회는 2014년 말 소비자 보호를 위해 신용카드 약관에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요구할 경우 카드사가 남은 할부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조항을 반드시 넣도록 했다. 제도 변경 직후인 2015년 한 해 동안의 할부금 철회·항변 신청 내용을 분석했더니 스포츠센터 다음으로 '먹튀'('먹고 튄다'를 줄인 말) 신고가 많았던 업종은 학원(18.2%)이었다. 학원에 수강 신청을 할 때 여러 개월치 학원비를 한꺼번에 내면 학원비를 할인해주는 때가 잦은데,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학원이 문을 닫고 관계자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피부미용·화장품(10.5%), 사진관(7.2%), 서적(6.0%) 등도 상위권에 올랐다. '피부미용·화장품'은 피부 마사지 업체가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금액이 차감되는 고액 회원권을 판 다음에 잠적하는 사례가 잦았다. '아기 성장 앨범'(태어날 때부터 돌 무렵까지 사진 촬영 서비스) 등 긴 기간 계약하며 돈을 미리 냈는데 사진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피해를 본 소비자들도 종종 카드사에 할부 면제를 신청했다. '서적'과 관련한 피해 중엔 연(年) 단위 회원제로 운영되는 학습지가 많았다.

◇"업체 폐업 땐 할부가 유리, 수수료는 감안해야"

신용카드 할부금 철회·항변 제도는 스포츠센터 폐업 등으로 피해를 보았을 때 활용하기 좋은 제도다. 할부금 철회·항변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 신용카드 할부엔 연 8~21% 정도가 수수료로 부과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별문제 없이 스포츠센터·학원 등의 서비스 기간이 마무리된다면, 카드사 배만 불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많은 카드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업종이나 카드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며 "돈을 내려는 업종에 대해 무이자 할부를 해주는 카드를 활용하면 수수료를 아끼면서도 혹시라도 있을 '먹튀' 피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